한국과 16강전에서 맞붙게 된 이탈리아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63)은 경기 때마다 늘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물건이 하나 있다. 성수(聖水)가 담겨 있는 물병이 바로 그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트라파토니 감독은 처음으로 월드컵대표팀 감독을 맡아 출전하면서 밀라노 교외의 수도원에 있는 여동생이 보내준 성수를 갖고 왔다.
성수를 지님으로써 신의 가호가 있다고 믿고 있는 그는 3일 에콰도르와의 첫 경기에 앞서 선수들과 미사를 봤다. 8일 크로아티아와의 경기 직전에는 경건하게 성수로 손을 씻었으며 13일 멕시코전에서는 팀이 0-1로 뒤지자 성수를 벤치 주변에 뿌리기도 했다.
트라파토니 감독의 신앙심이 하늘에 전해졌던지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로 간신히 16강 티켓을 따냈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16강행을 확정지은 뒤 “정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으며 신은 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이탈리아 선수들 역시 감독의 공개적인 종교활동에 동참하며 이탈리아가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을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전을 앞두고 천안에 캠프를 차린 이탈리아 대표팀은 16일 오전에는 자국 축구협회에 부탁해 서울에서 이탈리아인 신부까지 초청, 미사를 갖고 승리를 기원했다.
그럼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는 동안 성수를 다 써버리지는 않았을까.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수녀인 동생이 오빠가 팀을 결승까지 이끌 것으로 예상했을까. 트라파토니 감독은 “나는 큰 병을 갖고 있다”고 여유를 보였다. 우승 후보라는 평가와 달리 고전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한국전에서 신의 힘에 더 의지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