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주역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후보선수들의 ‘그림자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2한일월드컵에 출전한 ‘태극전사’는 모두 23명이지만 단 한번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아볼 기회를 가졌던 선수는 16명. 윤정환 최은성 최태욱 김병지 최성용 이민성 현영민은 단 1분도 출전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최용수와 이천수는 미국전에서 후반 막판 교체멤버로 투입되며 단 한번이라도 뛸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차두리는 폴란드전 종료 2분전 교체됐던 것이 지금까지 벤치를 지킬 수 있는 버팀목.
당연히 이들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나올법도 하다. 그러나 16강에 오를때까지 히딩크사단에는 불협화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주전으로 승리의 주역이 됐건 후보로 벤치에서 응원을 했건 모두 한마음이다.
한국축구가 세계 축구사에 새역사를 쓸 수 있었던 바탕이 바로 이 것이다. 히딩크감독에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 선수들간의 화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후보선수들이라고 어찌 뛰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단 한번만이라도 불러만 준다면…”.
월드컵 개막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허리부상을 당했던 ‘독수리’ 최용수는 “비록 몸이아파서 못나가고 있지만 마음은 그라운드에 선 동료들과 함께 뛰고 있다”고 했다.
출전기회를 주지 않는 감독에 대해 서운한 감정은 없을까.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하고 나 자신도 하루빨리 회복해 대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에 대비하고 있다. 동료들이 너무 잘하고 있는데 분위기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그저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는게 최용수의 반응.
안정환 이천수 차두리는 완전히 조커 3총사로 자리잡았다.
안정환은 포르투갈전에서 처음 선발 출장, 90분을 소화하며 A매치 첫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경기이후‘조커’가 더욱 적성에 맞다는 평가가 굳어졌고 본인도 인정하는 분위기. 체력과 투지로 똘똘 뭉친 이천수와 차두리는 언제라도 뛸 수 있다는 자세로 벤치멤버중 경기집중도가 가장 높은 선수들로 꼽힌다.
이천수(20년11개월)는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골을 기록할 경우 86멕시코월드컵 당시 21년4개월만에 골을 기록했던 김종부를 제치고 대표팀 사상 월드컵 최연소 득점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어 경기중 감독을 향한 그의 애타는 눈길은 보는 사람이 애처로울 정도.
가장 주전 다툼이 치열한 포지션은 수문장 자리. 그동안 ‘한국대표 수문장’으로 각광받은 김병지는 이운재가 주전 자리를 꿰차는 바람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최은성은 아예 훈련 때 동료들의 공을 받아주는 데 만족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김병지는 같은 속앓이를 하고 있는 윤정환과 함께 속을 타들어가겠지만 훈련때마다 동료들이 가장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분위기메이커역을 자처하며 고참의 역할을 톡톡히 내내고 있다.
대전〓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