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에는 감격의 눈물이 흘렀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은 목이 메어 갈라졌다.
후반 42분이었다. 이탈리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올린 황선홍의 센터링이 길게 뻗어가 수비수 마르크 율리아노 앞에 떨어졌다. 율리아노가 급하게 걷어낸 볼은 힘없이 설기현 앞으로 굴렀다. 지체 없이 터진 설기현의 왼발 인사이드 킥. 이탈리아 GK 잔루이지 부폰이 몸을 날렸지만 볼은 이미 골네트를 가른 후였다. 1-1 동점.
이어진 연장전. 한국은 야생마처럼 강한 체력을 앞세워 줄기차게 이탈리아를 몰아붙였다. 연장 전반 14분 이탈리아 플레이메이커 토티가 경고 누적으로 그라운드에서 쫓겨나갔다. 10대 11로 이탈리아의 수적 열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스피드도 현저히 떨어졌다.
벼랑에서 탈출한 한국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연장 후반 25분 미드필드 왼쪽에서 이영표의 정확한 센터링이 이탈리아 문전을 향했고 볼은 솟구쳐 오른 안정환의 머리를 맞고 골네트를 갈랐다.
승부는 이 한방으로 끝이었다. 스탠드에서 솟아오른 화려한 폭죽이 밤하늘을 밝혔고 이탈리아 선수들은 땅에 주저앉은 채 일어설 줄 몰랐다.
가슴 벅찬, 손에 땀을 쥐지 않고는 볼 수 없는 2002월드컵축구대회 최고의 드라마였다.
전반 4분 한국이 페널티킥을 얻었을 때만도 한국의 8강 진출은 손쉽게 다가서는 듯 했다. 하지만 페널티킥 징크스는 또 한차례 한국을 외면했고 18분 오히려 이탈리아에 선취골의 감격을 안겨줬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한국 문전으로 정확하게 찬 왼쪽 코너킥을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최진철을 밀어내며 숨돌릴 틈도 없이 머리로 골네트 왼쪽 모퉁이에 꽂아 넣었다. 이후는 말 그대로 ‘혈투’였다. 한국은 여러 차례 동점골 찬스를 맞았지만 성공시키지 못했다. 행운은 이날만큼은 한국을 외면하는 듯했다. 붉은 악마의 함성도 점점 잦아들었다.
배수진을 치고 후반을 맞이한 태극 전사들의 얼굴은 비장했다. 전반의 불운을 떨어낸 듯 몸놀림도 강하고 빨라졌다. 7분 안정환이 아크 왼쪽에서, 5분 후 박지성이 아크 지역 내에서 잇따라 프리킥을 얻어내며 이탈리아 문전을 위협했다.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선취점을 얻은 후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한 ‘카테나치오(빗장수비)’도 견고했다.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절박한 카드를 내밀었다. 17분 수비수 김태영 대신 황선홍을 투입, 공격력을 강화했고 5분 후 김남일이 발목 부상으로 실려나오자 이천수를 내보냈다.
이후 한국의 파상 공세는 더더욱 매서워졌다. 24분에는 안정환이 상대 페널티지역내 오른쪽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다.
그러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는 노련했다. 한국의 공격 길목을 정확히 지키며 패스를 차단, 곧바로 위협적인 역습에 나섰다. 28분과 30분 비에리가 이운재와 1대 1로 맞서는 찬스를 맞기까지 했으나 대전월드컵경기장은 더 이상의 행운을 이탈리아에 허용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전광판 남은 시간은 8분. 코너에 몰린 히딩크 감독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수비 사령탑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한 것.
작전은 적중했다. 노도처럼 이탈리아를 몰아붙인 한국은 경기 종료 직전 기어이 동점골을 뽑아냈고 연장 후반 12분 너무나 극적인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침몰시키고 말았다.
대전〓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