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유럽과 남미가 득세하는 국제 축구 무대에서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양대 산맥’의 높은 그늘에 가려 들러리를 서는 데 그쳤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시아 국가로서 월드컵 8강에 오른 팀은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유일했다. 당시 ‘수수께끼의 팀’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북한은 예선에서 이탈리아를 1-0으로 잡더니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3골을 앞서나가다 에우세비오에게 4골을 허용하며 3-5로 패했다.
북한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오르기는 했어도 당시 본선 출전국 수가 16개국에 불과했고 팀간 전력차가 심했던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이번 쾌거는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돌풍 이후 침묵을 지키던 아시아 축구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16강 진출로 그나마 미미한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8강 진입으로 아시아 축구는 변두리를 벗어나 중심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성장은 3류에 머물던 아시아 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을 필두로 일본 중국의 선전이 잠자고 있던 아시아 축구를 깨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 AP통신은 한국이 폴란드를 누르고 월드컵 첫 승을 거뒀을 때 ‘아시아 축구에 무한한 행복감이 밀려든 한판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데뷔해 16실점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반세기 가까운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끝에 짜릿한 결실을 보았다. 한국의 이 같은 도전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발전 가능성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해 1골도 넣지 못한 채 3전 전패로 조별리그 탈락한 중국의 언론은 ‘한국이 48년 만에 거둔 승리를 단번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며 ‘한국처럼 중국도 언젠가 이름을 날릴 날이 올 것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의 나카고지 도르 축구전문기자는 “일본이 한국과 함께 8강에 동반 진출하지 못해 아쉽지만 한국은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충분히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또 그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아시아에 배당될 본선 티켓의 수도 늘어날 공산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대전〓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