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네덜란드 파르세펠츠에서 한국인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19일 독일 국경 인근의 파르세펠츠에 있는 ‘히딩크 다이크(도로)’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한눈에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아봤다.
히딩크 도로에서 만난 폴린 세싱크 할머니는 기자가 “히딩크”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한국인일 줄 알았다”며 박수를 쳤다. 그는 “나는 보통 라디오를 듣지 않지만 어제는 들었다. 한국이 1-0으로 지다가 나중에 역전한 것은 한마디로 ‘뷰티풀’이었다”고 즐거워했다.
“히딩크 감독의 이름을 딴 도로가 생길 정도로 고향에서도 영웅이 됐느냐”고 묻자 “이곳에는 히딩크라는 성이 많다. 히딩크 감독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도로”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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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오던 다른 중년은 자신을 ‘히딩크 감독의 형의 친구’라고 소개한 뒤 부모가 사는 곳을 일러줬다. “거스가 우리 고장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히딩크 감독의 부모 집에서 히딩크 감독의 아버지 해리트 히딩크(85)가 창가에서 아들의 기사가 실린 신문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취재 약속 없이 불쑥 찾아간 기자를 반갑게 맞은 그는 “거스는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해리트씨가 “어제 너무 흥분했다. 너무 많이 소리를 질렀다”고 말하자 어머니 요프 히딩크(82)는 “경기가 끝나고 우리 부부가 서로 얼싸안고 뛰었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앞에 와서 축하해줬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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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축구선수 출신인 해리트씨는 어린 시절 히딩크 감독 형제에게 처음 축구를 가르쳤다. 해리트씨는 “어릴 때 거스에게 축구 못지 않게 공부가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거스가 오늘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그렇게 잘 하는 것은 어릴 때 공부를 착실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5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해리트씨는 20여년 전 인근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했다.
어머니 요프씨는 “4월 집에 들른 거스에게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힘을 주었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온다는 요프씨에게 “그가 전화에서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사람들이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답했다.
지금도 수영장에 다닌다는 요프씨는 건강하게 보였지만 “고령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어 한국에 가고 싶어도 못간다”고 아쉬워했다. 이들 부부는 “오늘 가족 축하모임이 있다”며 집을 나섰으나 사진 촬영만은 한사코 마다했다.
해리트씨 집 앞에서 히딩크 감독과 외사촌 사이라는 헨리 멀더가 기자를 알아보고 자전거를 세웠다. 그는 “거스는 이 고장 축구 구단인 그라프샤프 팀에서 뛸 때도, 나중에 트레이너로 일할 때도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고 전했다.
축구 전문가라는 그에게 ‘스페인과의 4강전에 한국이 이길 것 같으냐’고 묻자 “승률은 80% 정도”라고 답했다. 이탈리아가 스페인보다 강팀이라는 게 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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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걷는데 ‘우리는 guus을(‘를’을 ‘을’로 잘못 씀) 사랑한다’는 낯익은 한국말이 눈에 들어왔다. 비에르체라는 이름의 한 카페에 한국말 간판과 태극기가 걸려 있던 것.
카페에 들어서 ”누가 한국말을 아느냐“고 묻자 ”글자도 태극기도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고 점원 크리프튼 베르그는 말했다. 이 카페는 한국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한국팀을 응원하며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곳.
베르그씨는 “어제 한국팀 경기중 네덜란드 방송들이 이 카페에 와 거스의 형 한스를 인터뷰했었다”며 한스는 젊을 날의 거스를 묻는 취재진에게 “그는 뭐든지 빨리 배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주인 하트얀 트웬터는 “거스가 고향에 오면 자주 들르는 카페”라고 자랑스러워한 뒤 “거스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즐기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거스는 고향의 축구팀 드 그라프샤프 팀을 지도할 때도 선수들의 베스트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었다”고 말했다.
카페 앞에서 만난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한국팀이 우승하기를 바란다며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그들은 “거스의 성공 비결은 말(Big Mouth)만 앞세우는 대도시 사람들과 달리 ‘먼저 행동하고 그 다음에 말하라’는 우리 고장의 전통이 몸에 배 있기 때문”이라면서 “빅토리 코리아”를 외쳤다.
파르세펠츠〓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