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한 관중들의 함성에 묻혀 히딩크 감독의 소리를 듣지 못한 유상철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홍명보는 들고 있는 수건을 휘돌리며 벤치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잠시후 유상철과 눈빛이 마주친 히딩크 감독은 특유의 몸짓과 사인으로 뭔가를 급하게 주문했고 유상철은 날카로운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비록 3분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이후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유상철의 지시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포지션을 바꾸고 포메이션을 변화시켰다.
주전 수비수인 김남일과 김태영은 물론 팀 리더인 홍명보마저 벤치로 불러들인 히딩크의 자신감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정답은 유상철.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히딩크 감독의 유상철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경기이기도 했다. 날카로운 눈빛이 말해주듯 강인한 체력과 근성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유럽이든 남미든 어떤 선수와 맞붙어도 몸싸움에서 밀리는 일이 없고 감독의 지시를 가장 빠르게 이해하고 이행하는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역대 어느 국가대표팀 감독치고 유상철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경기장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상철에 대해 ‘강하다(STRONG)!’고 표현한다.
서울 응암초등학교 4학년때 잔병치레가 많아 건강을 위해 축구를 시작한 유상철이 22일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다. 93년 11월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돼 94년 3월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에 데뷔한 그가 100번째 A매치에 출전하게 된 것.한국 축구선수로는 차범근 최순호 홍명호 황선홍에 이어 5번째다.
그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까지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이후 공,수를 넘나들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 ‘멀티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상철은 폴란드와의 개막전에서 두 번째 쐐기골을 터뜨린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99번의 A매치에서 모두 16골을 뽑아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새로운 축구 역사를 쓰고 싶다”던 그의 포부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어떻게 발휘될 것인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전〓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