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진출 1등공신 이운재…PK막는 수훈

  • 입력 2002년 6월 22일 19시 03분


세 번째 키커까지 이운재(29·수원 삼성)는 슛의 방향을 잡지 못했다. 4만여 관중이 스페인 키커들이 킥을 할 때마다 '우∼'하는 야유를 보내며 이운재에게 힘을 보탰지만 몸도 한 번 몸도 한 번 날려보지 못하고 골문에 들어간 공만 우두커니 바라봐야했다. 다행히 한국 키커들도 모두 성공시켜 3-3.

네 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가 차례. 이운재를 속이기 위해 볼 앞에서 멈칫하며 페인트 모션을 취했지만 이운재는 속지 않았다. 볼 앞에서 멈칫해 속도가 떨어진 호아킨 산체스의 슛은 위력을 잃은 채 오른쪽으로 향했고 이운재는 침착하게 막아냈다.

승부차기 불패를 자랑하는 이운재의 침착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운재는 키커와의 수싸움에 능하고 예측력이 뛰어나 페널티킥 방어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실력이다. 올해 초 북중미 골드컵 8강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며 4-2 승리의 수훈장이 됐다. 이운재는 "내가 기억하는 한 승부차기에서 진 적이 없다"며 승부차기 불패를 훈장처럼 자랑했다.

스페인에 주도권을 내줘 몇 차례 실점 위기를 넘기고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간 일등공신도 이운재였다. 잇따른 격전으로 선수들의 몸이 무거웠던 전반. 한국팀의 전매 특허인 미드필드에서의 압박은 위력을 잃었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던 수비조직력도 흔들렸다. 개인기를 앞세운 스페인 선수들은 파상 공세를 펼쳤지만 골문을 지킨 이운재를 뚫지 못했다.

전반 28분 데 페드로의 프리킥에 이은 모리엔테스의 헤딩 슛은 오른쪽 골문 구석을 향했지만 미리 방향을 읽은 이운재가 가까스로 막아냈다. 전반 37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데 페드로가 날린 대포알같은 강슛을 펀칭으로 쳐냈다.

평소 골문을 잘 벗어나지 않는 이운재지만 이날은 수비진의 몸놀림이 무겁다는 것을 알고 수비 범위를 넓혀 최종수비수 역할까지 겸했다.

수문장 자리를 놓고 김병지와 치열한 주전 다툼을 벌였던 이운재는 월드컵 개막이 가까워 지면서 쾌조의 컨디션을 보여 주전을 꿰찼다. 16강전까지 4경기에서 2실점으로 막는 활약을 펼치고도 탄탄한 수비진에 가려 '저평가'됐던 이운재는 이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본선 5경기 507분 동안 2실점만 기록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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