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서울 조선호텔의 바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봤어요. 그런데 10일 한국-미국전이 열리던 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비를 맞으며 응원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매료됐습니다. 그냥 한번 밖으로 나가 봤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비를 맞고 응원하는지 보고 싶었어요.”
수(水)처리 회사인 비벤디 워터스에 다니는 영국인 마이클 스마트(56), 데릭 플레처(36), 말레이시아인 주이 키안 림(30)과 주한 영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루시 라이언(33·여)의 말이다. 이들의 한국 체류기간은 4개월부터 2년까지 다양하다.
이날 이후 이들도 거리응원에 조직적으로 동참했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빨간 두건을 쓰고 페이스 페인팅을 한 이들은 포르투갈전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 나가 한국인들과 합류했다.
경기 이후 시청 주변과 세종로, 명동 일대를 돌아다닌 이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응원단의 노래와 춤, 정열에 감탄했다.
“경기가 끝난 후까지 정열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응원단은 처음입니다. 훌리건의 종주국이라는 영국도 이렇게까지는 안하거든요.”(라이언씨)
“투지와 정열로 축구를 하는 한국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의 응원에는 대단한 정열이 깃들어 있어요.”(스마트씨)
이들의 감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입을 모아 경기 이후의 질서와 쓰레기 줍기, 망가짐 없는 시청 앞 화단에 찬사를 보냈다. “이탈리아전이 있었던 다음날 아침 묵고 있는 호텔에서 시청 앞 화단을 내려다보니 그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데도 전혀 망가지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어요.”(림씨)
“다들 북 치고 꽹과리 치고 노래 부르고 있는데 그 사이사이로 쓰레기 줍는 빨간 옷 입은 사람들을 봤을 땐 정말 할 말이 없더군요.”(스마트씨)
“영국에서 이탈리아를 이겼으면 거리 가게들의 유리창은 모두 박살났을 겁니다. 경기 이후에 난동을 전혀 부리지 않는 한국인들이 존경스러워요.”(플레처씨)
하지만 이들이 정말로 놀란 것은 한국 응원단의 친절함과 순수함이었다.
“이탈리아전 이후 다른 영국 친구와 명동의 한 바를 갔어요. 붉은 옷을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 가운데 외국인은 저와 제 친구 둘 뿐이었는데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군요. 잉글랜드라고 하니까 곧장 ‘잉∼글랜드, 짝짝 짝 짝짝’이라는 합창이 돌아왔습니다.”(라이언씨)
“경기 후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택시를 잡는데 안 그래도 별로 없는 택시를 저희에게 양보한 사람이 있었어요. 감동했습니다.”(플레처씨)
이들은 한국팀이 결승까지 진출하기를 바란다는 자신들의 희망을 한국인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