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여 관중의 우레와 같은 “대∼한민국” 함성이 터져나오자 정 회장도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함께 외쳤다. 그라운드로 걸어 내려간 그는 환호하는 붉은 악마 축구팬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승리의 감격을 함께 나눴다.
전날 울산에서 열린 독일-미국 8강전을 본 뒤 이날 오전 일찍 서울을 거쳐 광주에 도착한 그였지만 피곤한 기색이라곤 없었다.
4강 신화가 이뤄진 순간 정 회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랬다.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에 추월당하며 벼랑 끝에 섰을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 1순위에 올려 성사시킨 것도 그였고 지난해 대표팀의 계속된 부진으로 히딩크 감독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도 “그를 믿는다. 그와 함께 2002 월드컵을 치른다”며 끝까지 ‘히딩크 축구’를 지켜낸 것도 그였다.
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경기 파주시에 대표팀 전용트레이닝센터를 짓는 데 앞장섰고 엄청난 포상금을 약속해 사기를 북돋운 것도 그였다.
정 회장은 이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비리 혐의를 받고 있던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반대파 수장으로 직격탄을 날려 FIFA 내 정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지난해 일본의 대회 공식 명칭 표기 순서 물의와 교과서 왜곡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그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차라리 공식 명칭을 결승전과 맞바꾸자”고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아시아 축구를 대표한 정 회장의 이 같은 원칙에 충실한 모습과 배포는 급기야 그를 ‘한류 스타’로 부상시켰다. 8일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서 수십명의 중국 축구팬이 그를 알아보고 사인 공세를 펼쳤던 것은 대표적 사례.
정 회장은 한국 축구의 4강 진출로 과거 모든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됐다.
입지가 약화될 뻔했던 FIFA 내에서도 아시아 대표로 당당한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진심 어린 호응 속에 사상 첫 아시아 월드컵, 사상 첫 공동 개최의 참뜻을 지켜내게 된 것.
이날 경기 전 광주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하는 길목엔 ‘한국을 8강으로 이끈 정몽준 회장님을 사랑합니다’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광주〓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