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순간 광화문은…뭉쳤다 이겼다 “대∼한민국”

  • 입력 2002년 6월 23일 00시 01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 모인 거리응원단이 4강 진출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 모인 거리응원단이 4강 진출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2002년 6월 22일 오후 6시10분경. 권석훈군(17·고교 2년)의 목에 두른 태극기가 어느새 손아귀에서 구겨졌다. 손에서 배어 나온 땀방울이 태극기에 스며들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네거리. 석훈군이 바라보던 동아일보사 전광판에서는 한국 축구팀의 홍명보 선수가 승부차기 지점에서 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약 1초 뒤, 공은 깨끗하게 스페인 골문을 갈랐다.

광화문-시청 응원 현장
"4강해냈다" 광화문 45만 함성

석훈군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쥔 태극기를 머리 위로 휘둘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펄쩍펄쩍 뛰었다. 폭죽이 하늘로 터져 올랐다. 친구를 얼싸안고 서로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슬며시 흘러 나왔다.

그저 “아악!”하는 높은 음조의 외침만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대∼한민국”이란 구호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승리였다. 4강이었다. 석훈군은 태극기를 다시 목에 둘렀다.

이날 오전 5시부터 세종로, 시청 앞 광장, 종로 거리는 응원 나온 시민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태어난 지 10개월반 된 다현이(여)도 “평생에 다시 못 볼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엄마 조혜정씨(33·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품에 안겨 아빠 위창복씨(35)와 거리에 나왔다.

수만개의 빨강 파랑 노랑 녹색 막대풍선이 “땅땅” 소리를 냈다. 태극기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모국인 네덜란드의 국기가 흩날렸다. 김밥에 샌드위치, 시원한 음료가 차려진 돗자리가 거리 곳곳에 깔렸다.

전반전과 후반전 내내 시민들은 마음을 졸였다. 다섯 시간 이상을 뙤약볕 아래 앉아 있던 사람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돗자리에 눕거나 그늘 속 벤치에서 잠을 청하는 여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연장 30분도 순식간에 지나고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그제서야 시민들은 정신을 차린 듯 했다.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전광판에 한발이라도 더 가깝게 몰려들었다.

운명의 시간이 왔다.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가 찬 공이 골키퍼 이운재 선수의 두 손에 걸렸다. 거리는 온통 “이운재, 이운재”였다. 그리고 홍명보의 골이 들어갔다.

2시간40여분 동안 부인의 손을 꼭 잡고 경기를 지켜본 민평기씨(45·경기 김포시)의 눈이 벌게지며 눈물이 맺혔다. 누군가가 애국가를 선창했다. 민씨는 조용히 따라 불렀다. 애국가가 4절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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