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 방심이 패배 불러

  • 입력 2002년 6월 26일 01시 56분


독일의 발라크(中)가 한국 골키퍼 이운재가 쳐낸 공을 다시 차 넣으며 결승골을 뽑아내고 있다.아사히
독일의 발라크(中)가 한국 골키퍼 이운재가 쳐낸 공을 다시 차 넣으며 결승골을 뽑아내고 있다.아사히

한마디로 독일축구를 평가할 때 ‘재미없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힌다. 과거나 지금이나 스타일의 변화가 전혀 없이 힘과 높이를 앞세운 고공축구만 구사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

이번 대회를 취재중인 유럽출신 기자들도 “독일축구가 베켄바워-뮐러-클린스만을 거쳐 현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변한 게 없다”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을 정도.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 독일은 그들 나름의 스타일로 세계 축구의 강호로 굳건히 자리잡아 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저돌성이 초석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런 독일을 상대로 한국이 그동안 한번도 선발출장하지 않았던 이천수와 차두리를 내세운 것은 독일의 저돌성에 맞대응하겠다며 ‘발톱을 세웠다’는 증거다.

한국의 이런 전략은 후반 중반까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후반 들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독일의 약점을 파고들겠다는 듯 전반 내내 적극적인 수비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후반 들어서도 균형이 깨지지 않자 독일은 흥분한 듯했다. 후반 26분 이천수의 돌파를 미하엘 발라크가 백태클로 저지하며 양 팀 통틀어 이날 첫 옐로카드를 자청한 것.

이것이 계기가 됐을까. 그동안 한국을 한수 아래로 얕잡아 보기만 하던 독일이 긴장하며 우리를 맞상대로 인정해 준 것이 고마웠던지 선수들의 경계심이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수비위주의 수세적인 플레이를 펼칠 필요가 없다는 듯 즉각 공격에 무게중심을 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결정적인 오판이었고 뼈아픈 실점은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독일은 우리 수비수들이 전진수비를 펼치는 틈을 놓치지 않은 채 단 한번의 롱패스로 골문에 다다른 뒤 결국은 골문을 열어제치고 말았다.

독일이 재미없고 창의적이지 못한 축구를 하지만 쉽게 흥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한순간 잊은 대가는 이처럼 가혹했던 것.

그동안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강호들을 먼저 흥분시키며 최고의 이변 드라마를 연출해왔던 한국으로선 단 한번의 흥분으로 사상 초유의 월드컵 우승꿈을 날려 버린 셈이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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