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위상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거스 히딩크 감독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코칭 스태프에게도 고마울 뿐이다.
냉정하게 경기로 돌아가자면 16강전 이후 두 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러 체력이 고갈됐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초반의 압도적인 우세를 이어가지 못한 게 아쉽다.
독일 선수들의 몸이 채 풀리기도 전에 차두리, 이천수 등 젊은 선수들이 자신있게 몰아붙여 분위기를 압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봉이 꺾이며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던 것이 크게 보면 패인이다. 좀 더 정교한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진영을 교란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후반 들어 안정환 설기현 등 공격수들이 투입되면서 주도권은 다시 한국팀으로 넘어왔고 독일 선수들은 눈에 띄게 몸놀림이 둔해졌다. 독일팀 공수의 핵인 올리버 노이빌레는 툭하면 짜증을 냈고, 미하엘 발라크는 이천수의 과감한 돌파를 반칙으로 끊다 경고를 받는 등 거세진 한국의 공격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비진은 흠잡을 데 없었다. 이운재는 말할 것도 없고, 최진철은 키 큰 독일 선수들의 고공 폭격에 맞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같이 떠 결코 완벽한 헤딩 찬스를 내주지 않았다. 김태영은 묵직한 슈팅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눈물의 투혼을 보였고, 홍명보는 국가대표간 A매치에 131회 출장한 백전노장답게 공이 가는 길목에 언제나 서 있었다.
링거를 맞아가며 정신력으로 버티다 후반 교체된 최진철의 공백이 커 보였다. 결승골을 허용할 당시 만약 최진철이 그대로 뛰었더라면, 그래서 빈자리를 커버했더라면 발라크에게 공간을 내줬을까.
하지만 한국 축구는 이제 당당히 세계 4강이다. 오늘 졌다고 해서 조금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모든 관중이, 온 국민이 박수를 보내지 않았던가.
이탈리아전에서 보여줬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계속 잊지 않고, 국민과 한 마음이 돼 더욱 분투한다면 언젠가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 독일을 만나 멋지게 설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허정무/본보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