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붉게 물든 경기장에서 그들은 상쾌한 여름 밤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의 월드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는 없다. 다만 진한 아쉬움만이 가슴 한 구석에 남을 따름이었다.
‘황새’ 황선홍(34·가시와 레이솔)과 ‘캡틴’ 홍명보(33·포항 스틸러스)에게 29일 대구에서 열린 터키와의 3, 4위전은 월드컵 고별무대였다. 둘 다 4회 연속 월드컵 출전의 대기록과 4강 신화를 뒤로 한 채 축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이날 황선홍은 날고 싶어도 날 수 없었다.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무리하게 출전하다보니 왼쪽 엉덩이 부상이 심해졌기 때문. 경기 전 몸을 풀 때도 홀로 벤치를 지킨 그는 90분 동안 안타깝게 게임을 지켜봐야 했다. 지난달 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그로서는 태극마크를 단 마지막 경기에서 단 1초도 나설 수 없었으니 속이 더욱 쓰리기만 했다. 13세나 아래인 이천수에게 직접 물병을 건네주며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한 그는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지 경기 내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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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도 한동안 자리를 못 뜬 황선홍과 홍명보는 6만3000여 관중의 뜨거운 기립박수 속에서 경기장을 떠났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뒤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히…’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왔다.
대구〓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