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수기]<6>8강에 이은 4강 신화

  • 입력 2002년 7월 7일 17시 25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독일과의 4강전이 끝난 후 월드컵 주관방송사(HBS)와의 인터뷰가 있었고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쳤다. 왜 눈물이 나왔는지 나도 잘 모른다. 여러분이 알아서 해석해도 좋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축구감독일 뿐이다. 좋을 땐 웃고 슬플 땐 울 수도 있다. 다만 한국에 온 이후로 울어본 적은 없다. 왜 하필 그날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너무도 아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전을 앞두고 한국팀이 조금만 더 쉴 수 있었다면 나는 요코하마에서 울었을 것이다.》

▼글 싣는 순서▼

- [히딩크 수기]<1> 제2의 조국 대한민국
- [히딩크 수기]<2> 한국축구와의 인연
- [히딩크 수기]<3> 컨페더컵-골드컵 시련딛고
- [히딩크 수기]<4> 평가전 잇단 선전 희망을 봤다
- [히딩크 수기]<5> 16강 약속 지키다
- [히딩크 수기]<6> 8강에 이은 4강 신화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와의 2회전 경기(16강전)가 한국팀의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힐 만큼 강팀이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의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강팀들에 비해 상대하기가 쉬울 수도 있었다. 이탈리아는 수비 위주로 플레이를 하다가 반격을 가하는 스타일이고 한국은 상대팀을 압박하고 끊임없이 공격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탈리아전에 대해서도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았다. 물론 매우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말이다.

▼독일전 너무나 아쉬웠다

나는 경기 내내 한국 선수들이 잘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기 전에도 한국은 한두 차례 결정적인 찬스가 있었다. 설기현의 골은 다소 의외였다. 골을 만들기에 그렇게 쉬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이제 종료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상관없이 언제라도 찬스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말해왔다. 차두리에게는 “골지역에서는 최대한 슈팅에 집중하라. 단 1초 만에 볼이 돌아올 수 있는데 고개를 뒤로 꺾고 아쉬운 표정을 지을 여유가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 어려워 보일 때에도 말이다. 우리는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도 그걸 분명히 증명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전 때 시간이 다 돼 갔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마침표는 안정환이 찍었다. 나는 안정환이 골을 넣기를 바랐다. 그가 앞서 페널티킥을 놓쳤기 때문이다. 나는 안정환에게 “페널티킥을 놓치는 것도 경기의 일부일 뿐이니 기죽지 말라”고 당부했다. 안정환은 자신의 실수를 놀라운 집중력으로 만회했다.

나는 두달 전만 해도 이탈리아 같은 팀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팀은 짧은 기간에 놀라운 속도로 전술을 소화해 냈고 불 같은 투쟁심을 길렀다. 한국 선수들은 당당히 실력으로 이탈리아를 이길 자격이 있었다.

안정환은 이날 골로 소속팀인 이탈리아 페루자 구단주의 ‘더러운 말’(“소속팀 국가를 상대로 골을 넣는 것은 배은망덕한 짓이다”)을 들어야 했다. 그 구단주의 말대로라면 브라질은 절대 월드컵에서 우승해서는 안된다. 호나우두를 비롯해 스타 선수들이 모두 월드컵에서 맞붙는 유럽 각국에서 뛰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나는 내심 뿌듯했다. 이 사건은 한국 선수들과 한국팀이 얼마나 세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지 입증했기 때문이다.

8강전 상대인 스페인은 이탈리아와는 다른 스타일의 팀이었다. 한국팀은 피로가 쌓였고 스페인은 우리보다 이틀이나 더 쉬었다. 오후에 하는 경기는 체력 소모가 심해 체력이 바닥난 우리에게는 더욱 힘든 경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이겼다. 경기 내용도 50대 50으로 대등했다. 우리 수비가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스페인 또한 이날 경기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스페인보다 휴식시간이 적었는데 우리가 이겼다는 것은 선수들이 그만큼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패인은 언제나 ‘내’게 있어

4강에 오른 것은 한국팀으로서 볼 때 엄청난 성과였다. 내 기쁨도 98년 프랑스월드컵 때 내가 이끈 네덜란드팀이 4강에 올랐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문제는 체력이었고 우리는 4강 상대인 독일에 패했다. 패배에 대한 변명은 필요없다. 나는 늘 “원인은 자신에게 있지 외부적인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독일전에서 김남일이 빠진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그의 부상이 악화된 것은 모두 내 탓이었다. 김남일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 스페인전에 출전했고 그래서 우리는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경기 후 나는 선수들에게 “우리가 어떤 상대와 싸웠는지 잊지 말라. 우린 4강에 와서 진 것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16강전부터 우리는 매경기 사실상 대회 결승전을 치러왔다. 우리가 상대한 팀이 모두 월드컵 우승후보였지 않은가. 이제 한국팀은 세계 어떤 팀을 상대로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국팀에겐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 그 다음 월드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팀이 언젠가는 월드컵에 키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도 가까운 시일 내에.

▼붉은 악마들 자랑스러워

터키와의 3, 4위전 때도 내가 반드시 이기려고 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꿈을 이어가야 했고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싶었다. 일부에서는 경기에 안 뛰어본 교체 멤버를 투입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가장 컨디션이 좋은 최상의 선수로 최고의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그게 스포츠다. 더군다나 3, 4위전은 월드컵의 ‘작은 결승전’이기도 했다.

결과는 한국팀의 패배였다. 수비 쪽에 문제점이 많았다. 선수들이 다치고 지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팀은 이날 경기에서도 종료 직전 송종국이 끝내 한골을 더 터뜨려냈다. 세상에 이런 팀을 봤는가.

나는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더 자랑스러운 건 경기장은 물론이고 숙소, 훈련장까지 몰려들어 뜨거운 성원을 보내준 한국 축구팬들이다. 나는 유럽의 숱한 팀들을 지도하며 수많은 축구팬을 봐왔지만 한국팬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이 4강에 오른 것은 선수들의 노력과 함께 팬의 성원 덕분이었다.

정리〓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경기장에서 만난 히딩크 감독과 밀루티노비치 중국 감독.

▼24억원+α …히딩크 얼마나 벌었을까

‘200만달러 +α.’

한국에 월드컵 ‘4강 신화’란 큰 선물을 주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거스 히딩크 감독. 과연 그는 한국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 갔을까?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히딩크 감독이 가져간 돈은 모두 약 200만달러(약 24억원)”라고 밝혔다. 1년반 동안 연봉 약 150만달러. 4강 진출 포상금 25만달러. A매치 격려금 약 1억원. 그리고 삼성카드 광고모델료 약 3억원(추정). 이 밖에 계약상 밝혀지지 않은 돈도 고 각계에서 답지한 또 다른 격려금과 상품 등도 많있다.

연봉과 포상금은 계약상 협회가 세금을 내고 난 뒤 현금으로 고스란히 히딩크 감독이 가지고 가는 돈. 격려금과 광고모델료엔 국내법에 따른 세금이 따라붙는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200만달러가 조금 넘을 것이라는 게 협회 관계자의 계산.

협회 처지에서 보면 전용차로 제공한 현대 그랜저 XG와 그의 숙소로 사용된 롯데호텔, 하얏트호텔 객실료 등을 합치면 훨씬 많은 돈을 히딩크 감독에게 투자했다.

그러나 협회는 “우리가 투자한 것보다 몇 백배, 몇 천배를 얻었다”는 반응이다.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며 얻은 국가이미지 제고와 한국과 네덜란드의 새로운 관계 구축, 축구팬들의 관심 유도 등을 감안하면 수천만달러 이상의 효과를 봤다는 분석. 이 점에서 히딩크 감독도 한국팀을 통해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설 수 있었기 때문에 ‘명성’이라는 또 다른 더할 수 없이 큰 가치를 함께 가지고 돌아간 셈이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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