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홈팬이 되자…홈팬이…

  • 입력 2002년 7월 11일 16시 22분


월드컵이 끝났다. 정말 다행이다. 아마 월드컵이 보름정도 더 지속이 되었다면 필자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위치를 포기하고 축구판을 떠도는 부랑인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긴 지금도 충분히 비 정상적으로 살고있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차범근 해설위원이 프랑스의 예선탈락이후 입버릇처럼 말하던 ‘전문가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님’ 이라는 코멘트였다. 필자역시 여기 컬럼에 ‘홈팬이 되자’ 라는 글을 쓰면서 홈관중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강조를 했었지만 경기장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과정이야 어째든 한국경기가 있는 날은 경기장 뿐만이 아니고 전국이 붉게 물들었으니 나름대로 축구경기장 밖의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고 하던 필자의 말이 우스운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월드컵이 끝난지는 일주일 밖에 안되었지만 6월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운동장이나 공터에는 모두 축구공을 들고 나서는 사람들 투성이다. 그 사람들이 축구공을 들고 경기장을 찾은 이유 중에 하나는 한달내내 티비에서 틀어주고 분석해주고 말해주던 축구중계의 잔상효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주고간 것은 국가의 신인도 상승이나 엄청난 홍보효과가 아니고 국민전체의 축구수준을 두단계 이상 업그레이드 시켜 줬다는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를 보면서 그동안 가장 안타까왔던 점은 그토록 축구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도 우리나라 대표팀 경기를 제외하고는 90분 내내 티비화면에조차 시선을 고정시켜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6월 한달을 생각해 보자. 빠른경우 오후 2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어느 채널을 돌리던 세계적인 선수들이 파란 잔디 위에서 피버노바 공을 쫓아가며 뛰고 있었다. 더더욱 무조건 약자편을 응원하는 관중의 특성상 프랑스, 아르헨티나등의 강팀들의 탈락과 조예선 막바지의 피터지는 순위싸움으로 인해서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나라와 아무런 상관없는 경기에 열을 올리며 시선을 고정시키게된 것이다.

무슨 스포츠이던 많이 보면 보는 눈이 늘게 된다. 더구나 월드컵처럼 최고의 방송기술이 동원되어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반칙 하나하나까지도 다 잡아내 주면서 최대한 현장 같은 느낌을 전달하려고 하는 중계일 경우에 그 효과는 매우 탁월하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축구교육을 받았던 셈이다.

그 효과는 비단 축구를 보는 눈만이 아닌, 축구를 직접 수행하는 데에서도 많은 영향을 나타낼 것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때 전방철책에서 군생활을 했던 필자는 월드컵 전후로 각 소대의 축구실력이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듣는 중고대학 선수들도 월드컵 선수따라하기에 열중이라고 하니 일반인들이야 그 효과가 오죽하겠는가 ?

또 티비를 통한 세뇌교육(^^)의 효과는 이미 광고에서 나타났다. 전세계 어디에서 축구장에서 하는 응원을 광고로 삼아 하루에 열두번도 넘게 틀어주는 곳이 있단 말인가. 덕분에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나라의 이름을 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꿔버렸고 ‘오~~필승코리아’는 애국가 만큼이나 널리 불려지는 국민가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붉은악마의 상업성에 비난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광고효과가 한국 축구팬들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성과중 하나는 바로 이런 응원열풍으로 인한 인식의 변화가 아니었을까?

월드컵이 무지무지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의 성적도 성적이거니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축구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끝난 월드컵을 정리하면서 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것은 해당 경기들에 대한 반성이나 대안이 아닌 선수단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관한 신격화에 가까운 - 더불어 출처를 알 수 없는 - 소설들이 활개를 치고 있고, 위상이 높아진 국대선수들의 해외진출이나 대표팀 선수들이 직접 모습을 보일 K리그 경기보다는 히딩크감독의 출국장면이나 홍명보선수의 발언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팀의 수비전술은 그토록 관심도 많고 선수운용에 관심도 많으면서 ‘CU@K리그’ 아무리 밤낮 입으로만 떠든다면 내가 보러가는 경기의 팀들이 4백인지 3백인지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K리그 경기에 대한 관심은 경기자체가 아닌 단지 월드컵에 나온 선수가 출전하느냐 안하느냐가 더 관심사가 되버리는 것 같아 우울할 뿐이다.

우리..이런 실수 해 봤지 않은가 ?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지만 우리는 이런 축구붐을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도 느껴봤다. 물론 그때는 세계 4강이라는 신화도 없었고 1무2패 득점2, 실점 9 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돌아왔었으며, 지금과 마찬가지로 한국축구의 문제점은 빈약한 프로리그, 썰렁한 관중석 그리고 맨바닥에서 공을 차는 유소년선수들… 당시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축구를 보러와 달라고 외쳤었다. 프로구단 서포터즈에 가입하지 않으면 축구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며 축구를 사랑하는 척도가 ‘너 경기장에 몇번 가봤니?’라는 질문이었으니까…당시의 열기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 한국 축구는 어떻게 됐는가???

필자의 현재 생각은 지난번 '홈팬이 되자..홈팬이'라는 컬럼을 쓸 시기와 커다란 변화가 없다. 아무리 떠들고 외쳐도 보기 싫은 축구를 억지로 가서 봐줄 필요는 없다. 라는 카드섹션의 의미는 한때 잠깐 와서 반드시 서포터즈가 되어달라는 말이 아니다. 애국심이나 축구발전을 위한 대의 명분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관중을 K리그 경기장에 묶어두는 일은 그저 1-2회에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남일이 오빠가 짱이고 종국이 오빠가 좋아서 경기장을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한 선수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는 일년이라는 긴 시즌의 리그의 호흡을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서두르지 말자. 애써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려고 하지도 말자. 오늘 축구장에 못간다고 내일 당장 축구가 없어지지 않는다. 늘 이야기 하는 것처럼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이 먹고 살기에 바쁘다면 그냥 대표팀만 응원하자. 이제 9월이면 또다시 아시안게임준비로 축구판이 난리법석이 될 것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젊은 선수들이 선발될 것이고 어떤 결과를 낼지는 모르겠지만 군 문제가 해결 안 된 유망주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될 것이며, 전국에 널려있는 훌륭한 경기장에서 평가전도 가지고 연습경기도 할 것이다. 회사일 하고 학교다니면서 시험보기도 바빠죽겠는데 프로경기보고 대표팀 경기 다 보고 일은 언제하고 공부는 언제하겠나..?…^^

지금까지 축구는 항상 이래왔다. 월드컵이 끝나면 아시안게임이 있었고, 그 담에는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 대회, 다시 올림픽 대표팀이 구성되고 올림픽이 끝나면 아시안컵, 그리고 중간에 양념으로 한일 정기전, 거기에 다시 월드컵 예선전, 본선… 거기에다가 프로축구경기… 일년내내 축구와 함께 살아가는 생활패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필자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축구에 너무 빠지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탁을 하고싶다. 주변에서 축구에 미쳐서 생업을 포기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으니까 말이다...^^

필자는 축구를 가장 재미나게 보는 방법은 양팀선수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때 비로소 그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싶다. 친한 친구들에게 축구를 재미나게 보려면 선수명단을 뽑아서 외우고 가라고 말하곤한다. 대표팀 경기에서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이 오른쪽 공간으로 빠져들어가면 어디선가 차두리가 번쩍 하고 나타날 것 같지 않던가 ? 축구를 보는 재미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 이다. 상대방의 오른쪽 수비수가 질풍같이 공을 몰고 나올 때 전방에서부터 바짝 붙어 쫓아오는 선수가 있다면 자세히는 몰라도 그 선수는 거의 설기현일 확률이 90%다… 바로 그런 게 홈팬이 느낄 수 있는 재미다. 코너킥 챤스에 키 큰 수비수가 뛰어들어오면 백발백중 최진철이다. 멀리서 달려오는 모습만 봐도, 특별히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아는 이유는 거의 5-6월동안 대표팀경기를 무려 10차례나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지난 월드컵이후 반짝했던 축구열기 그리고 올림픽 대표팀에 이어졌던 그 열기로 인해서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선수들을 알고 있다. 이동국, 성한수, 김은중, 박진섭, 조세권, 박동혁, 김용대, 김도균, 최철우, 신병호,…그 선수들이 이제 프로 팀의 새내기로 경기장에서 뛰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프로축구연맹의 게시판에 가면 매 경기 전에 양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경기전날은 각 경기의 preview도 제공하고 간단한 양팀의 전술들도 소개가 된다. 경기장에 가기 전에 반드시 한번씩 읽어보고 가도록 하자.

한가지 더 추천하자면 축구에 관련된 많은 글을 읽어보자. 여기 후추만 하더라도 프로축구에 관한 좋은 글들이 엄청나게 많다. 초창기부터 프로축구와 한국축구에 관련된 좋은 글을 써온 00mymy의 글을 추천한다. 필자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부럽고 훌륭하고 멋진 마인드를 가진 축구팬이기 때문이다. 물론 글 솜씨나 말솜씨는 더욱 훌륭하다.(^^)

명심하자! 축구를 보러갈 때 반드시 준비해야하는 최소한의 것 두 가지!!

첫째, 등번호, 이름 등이 적혀있는 선수명단,

둘째, 축구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제심!!!….^^

가자!~~~ 우리 홈 경기장으로~~~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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