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현(KTF)의 작은 키는 너무 잘 알려져 이제는 별로 특이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이언트이글클래식 3라운드에서 켈리 로빈스와 맞대결을 펼치면서 그의 키는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1m53의 김미현이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장신 로빈스(1m75)와 우승을 다투면서 키 차이가 유난히 두드러진 것.
전날 로빈스에게 1타 뒤진 2위였던 김미현은 단신의 핸디캡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티샷 거리가 20∼30야드 덜 나가면서 로빈스가 쇼트 아이언을 잡을 때 긴 클럽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다윗에게 돌팔매가 있었다면 김미현에게는 ‘전가의 보도’ 페어웨이 우드가 있었다. 5개나 되는 우드를 번갈아 쓰며 과감하면서도 정교하게 그린을 공략, 우승을 향해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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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플레이처럼 숨막히게 진행되며 팽팽히 공동선두를 유지한 이날 승부는 17번홀(파4)에서 결판이 났다. 김미현은 183야드를 남기고 7번 우드로 한 세컨드샷을 컵 1.2m에 붙여 버디로 연결, 파에 그친 로빈스를 제치고 단독선두로 나섰다. 18번홀에서 침착하게 파를 세이브한 김미현의 얼굴에는 비로소 환한 미소가 번졌다.
뒤집기 우승에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한데 역시 그랬다. 김미현은 이번 대회를, 늘 함께 다니던 아버지 김정길씨 없이 치러야 했다. 큰아버지가 말기위암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에 아버지가 일시 귀국한 것. 아버지가 없는 사이 김미현은 이래저래 일을 냈다. 대회 하루 전날 우드 3개와 아이언을 새로 바꿔 출전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 아버지와 한마디 의논 없이 결정했지만 우승하는 데 새 클럽의 감이 좋아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김미현의 설명이다. 아버지 김정길씨 역시 “최상의 결과가 나왔는데 언짢아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22개월 만의 정상복귀로 김미현은 우승 강박증을 떨쳐내고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000년 9월 세이프웨이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이후 출전한 46개 대회에서 준우승 6차례를 포함해 톱10에만 23차례 들었을 뿐 정작 우승이 없어 속이 까맣게 탔던 게 사실. 조바심이 나다 보니 대회 초반 잘 치고도 마지막 라운드만 되면 지나친 긴장과 부담으로 경기를 그르칠 때가 많았다. 동계훈련에는 스윙 개조도 해봤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지난달부터 원래 갖고 있던 오버스윙으로 돌아간 김미현은 편안한 상태에서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 꾸준한 체력훈련과 시즌 중에도 1주일에 2, 3번씩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리면서 장기 레이스 중반에 들어서도 지치지 않는 힘이 붙었다.
꽉 막혀 있던 우승 체증을 후련하게 풀어버린 이번 쾌거로 김미현은 한층 더 성장할 것 같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자이언트 이글 클래식 최종 성적 | |||
순위 | 선수 | 파 | 스코어 |
(1) | 김미현 | -14 | 202(65-68-69) |
(2) | 로빈스(미국) | -13 | 203(64-68-71) |
(3) | 박지은 | -11 | 205(72-66-67) |
델라신(미국) | 205(69-69-67) | ||
(14) | 장정 | -7 | 209(71-69-69) |
(26) | 고아라 | -5 | 211(70-71-70) |
(42) | 박세리 | -3 | 213(71-70-72) |
한희원 | 213(73-68-72) | ||
이정연 | 213(67-73-73) | ||
(52) | 박희정 | -2 | 214(73-7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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