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허화백이 최근 산악인들에게 어엿한 식구로 대접받고 있다. 지난 5월과 7월 사이 불과 두 달 동안 세계 7대륙 최고봉 중 두 개나 정상에 오른 까닭이다. 지난해 7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K2봉(해발 8611m) 베이스캠프(5200m)에 다녀온 것까지 포함하면 내로라 하는 고산에만 1년 새 세 번이나 다녀온 셈.
허화백은 이전까지 산에 관해선 한마디로 문외한. 이전에 그가 오른 가장 높은 봉우리는 설악산 대청봉. 그것도 자그마치 26년전(76년) 친구 따라 투덜거리며 올랐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연재만화를 그리는 작업은 참 외로운 작업이에요, 37년간 그려왔으니 분량으로 치면 11만 페이지가 넘죠, 심신이 너무 지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그가 고산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우연이었다. 작업실에서 꼼지락거리고 있기만 한 그에게 한 친구가 K2에 ‘소풍삼아’ 다녀올 것을 권유했다. 때마침 ‘히말라야 14좌’ 마지막 관문인 K2봉 등정을 준비하던 박영석씨(39)를 친구로부터 소개받아 그 자리에서 “O.K.” 한게 화근(?)이었다.
26일간의 원정을 위해 열흘동안 만화를 미리 그려놓고 떠난 생애 첫 등반길. K2에 오르면서 “채석장 같은데를 왜 오르지?”라고 여유만만하던 그는 해발 5200m 베이스캠프에서 그만 고산증에 걸렸다. 결과는 후송. 4박5일동안 이틀은 포터의 등에 업혀서 나머지는 나귀를 타고 죽을둥살둥 내려왔다. 너무나 괴로워 등정대가 쓸 산소통의 산소를 을 몰래 마시기도 했다.떠날 때 69㎏이던 체중이 무려 6㎏이나 빠져 공항에 마중 나온 아내가 몰라볼 정도로 생고생을 했다.
다시는 고산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가 다시 산에 도전하게 된 것은 고통 중에서 맛 본 야릇한 희열 때문.
허화백은 이 기분을 “그 고생을 하며 걷는데 왜 그렇게 생선회 생각이 나는지….”라고 표현했다. 마치 ‘날아라 슈퍼보드’의 사오정 같은 엉뚱한 말이다.
지난 5월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4884m·인도네시아) 등정도 엉뚱했다. 구리바위산인 칼스텐츠를 가기 전 그는 단 하루 도봉산에서 처음으로 자일로 암벽을 타봤다. 그리고 칼스텐츠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5시간동안 암벽을 탔다.
그 중에는 절벽이 수직을 넘어선 이른바 하늘벽이라 불리는 ‘오버행’도 있었고 바위를 간신히 안고 돌아갈 수 있는 벼랑길인 ‘안돌이’도 버티고 있었다. 그때마다 “이거 독립운동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여기서 더 못 가”라고 주저했지만 결국 그는 해냈다.
칼스텐츠 등정에 성공하자 허화백은 힘을 얻었다. 원정에서 돌아온지 두 달도 채 안돼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5642m·러시아)에 연이어 도전한 것. 그러나 어려움은 있기 마련. “7월에 영하 10도까지 사시나무 떨 듯 떤데다가 정상 200m 남기곤 정말 못하겠는데 체면을 생각해서 속으로 울며 올라갔지.”
평소 허화백은 어떻게 지낼까. 16년째 치는 골프는 싱글, 거기에 사회인 야구클럽에서 7년동안 방망이를 휘둘렀다. 최근엔 ‘캠핑족’을 자처한다. 매달 2, 3번은 아내 이명자씨(52)와 함께 배낭과 텐트를 메고 청평 인근으로 떠난다. 거기서 친구들을 만나 주위의 산과 계곡을 돌아다닌다. “코앞까지 내려온 별을 보며 잠을 청하는 것도 꿀맛이지” 그의 캠핑 예찬이다.
하지만 고산등정을 통한 허화백의 모험정신은 계속될 것 같다. “내년에 북극에 가야되는데 내가 추위를 많이 타서… 훈련방법을 찾아야겠어.”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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