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등번호 19번의 최희섭(23·시카고 컵스)이 7회초 1루 대수비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 젊은 미국팬은 ‘리글리구장에 온 걸 환영한다’는 격려문구를 들어보이며 환호했다. 몇몇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내기까지 했다.
‘담쟁이 덩굴’로도 유명한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는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이 깊은 곳. 96년 4월7일 당시 LA다저스 소속이던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이 리글리필드에서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뒀다.
첫 빅리그 경기인 때문인 지 약간 상기된 얼굴로 1루에 선 최희섭. 그는 경기전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흥분된 표정으로 “(메이저리그가 된) 지금 이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만도 했지만 프레드 맥그리프 대신 1루수로 나선 최희섭은 수비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7회 나가자마자 상대팀인 밀워키 브루어스의 에르난데스가 친 투수앞 땅볼을 시카고 컵스 투수 클레멘테로부터 건네받아 아웃을 시키면서 처음으로 공을 만졌다. 8회엔 밀워키 크리스텐슨의 땅볼을 직접 포구해 1루를 밟았다. 그가 이날 경기에서 볼을 만진 것은 모두 5차례였다.
첫 타석의 기회가 온 것은 7회말. 시카고 패터슨과 소사가 연속삼진 당한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1구와 2구는 모두 몸쪽 볼. 3구째 스트라이크를 그냥 흘려보낸 최희섭은 4구째에 1루쪽 파울을 쳐낸 뒤 밀워키 산토스의 148㎞짜리 바깥쪽 빠른 직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메이저리그 첫 경기, 첫 타석에서 삼진.
99년 대학(고려대)을 중퇴하고 미국 프로야구로 뛰어든 이후 4년동안 기다렸던 타석치곤 아쉬웠다. 하지만 23세의 이 유망주는 어려서부터의 ‘꿈’이 이뤄진 걸 감사하며 이날 이타석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할 게 분명했다.
올해 마이너리그 트리플A 아이오와 컵스에서 거둔 타율 0.287(478타수 137안타)에 26홈런 97타점의 성적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기엔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그의 첫 걸음마는 한국인 타자중 처음이며 동양인 타자론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와 신조 스요시(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이어 3번째란 기록을 남겼다.
경기가 10-1 승리로 끝난뒤 최희섭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며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최희섭의 ‘시카고에서의 잠못 드는 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마음껏 방망이 휘둘러 삼진은 당했지만 속은 후련”▼
-언제 경기 출전을 통보받았나.
“6회말 공격때 감독이 7회 수비부터 나간다고 알려줬다. 그 얘길 듣는 순간 갑자기 떨리고 많이 긴장됐다.”
-삼진을 당한 상황은….
“타석에 서기전 동료들이 ‘저 투수는 94∼95마일(151∼152㎞)짜리 직구를 던진다. 변화구는 모두 볼이니까 직구만 노리라’고 말해 줬다. 한데 공 5개 모두 직구를 던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시원하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나오니 후련하더라. 삼진이나 땅볼아웃이나 다 아웃은 마찬가지 아닌가.”
-첫 메이저리그 경기를 치르고 느낀 점은….
“여유가 있는 마이너리그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뭔가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까지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왔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겠다. 첫 경기를 수비부터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닝이 지나가면서 적응할 시간이 생겼다. 타석에 먼저 섰다면 방망이 한번 휘두르지 못했을 것이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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