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친구]한강변 매일 12∼18㎞ 조깅 지나박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7시 37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뛴다”는 ‘여성 CEO’ 지나박이 한강변을 경쾌하게 달리고 있다.-전영한기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뛴다”는 ‘여성 CEO’ 지나박이 한강변을 경쾌하게 달리고 있다.-전영한기자
“어떤 때는 오만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뛰고, 어떤 때는 잡념을 잊기 위해 뛰지요.”

매일 한강둔치에서 12∼18㎞를 달리는 지나박(한국명 박계윤·32·까띠노코리아 대표).

박씨는 뛰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 새벽도 좋고 한밤중도 좋고 짬만 나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나선다.

서부이촌동을 출발, 한강대교와 동작대교 사이 왕복 약 6㎞ 구간을 두세번 도는 것은 기본.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면 한강철교나 반포대교쪽 선착장까지 뛰는 구간을 늘이기도 한다.

박씨는 외국국적을 가진 교포. 중학교 2년 때인 83년 호주로 이민을 떠나 내내 그곳에서 살았다. 박씨는 호주에서 잘 나가는 어엿한 사장님. 호주에서 아시아계가 운영하는 화장품 유통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큰 ‘아시안패시픽코스메틱스’를 경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민 20년만인 올 6월 한국에 돌아왔다.

귀국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올해 초 그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까띠노’라는 프랑스의 기능성 화장품 호주판권을 따내기 위해서였다. 본사 임원들과 10시간이 넘도록 면접인터뷰 겸 상담을 했다. 결과는 ‘OK’. 거기에 덤까지 하나 더 받았다.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한국 출신’이라고 하자 한국판권도 가져가라는 뜻밖의 제의를 받은 것.

“경찰조사 받듯 10시간이 넘게 진행된 면접인터뷰를 견뎌냈던 게 다 그동안 열심히 뛰었던 덕택이에요. 10년 넘도록 달리는 동안 잔 병 치레 한 번 없었으니까요.”

그가 사는 시드니 근교엔 공원이 많아 달릴 곳이 널려 있다. 그러나 한국에 온 뒤엔 운동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마침 호주에서 함께 지내던 ‘언니’가 서부이촌동에 살아 이곳을 조깅코스 기점으로 삼았다.

그에겐 미스코리아(호주교포) 출신이라는 이채로운 경력이 있다. 대학 1학년 때인 89년 그동안 슈퍼마켓 캐셔 등을 하며 번 3000호주달러(약 210만원)로 화장품 유통업체를 창업한 게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계기가 됐다.

“제가 화장품에 대해서 뭘 알아야죠. 미인대회에 나가면 그쪽 노하우를 알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무작정 나갔습니다. 호주 내 다국적 인종을 대상으로 한 미스 인터내셔널대회에도 출전했구요.”

뛰는 것 말고 그가 좋아하는 다른 스포츠는 없을까? “골프를 조금 쳐봤어요. 호주에선 한국처럼 골프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거든요. 처음 필드에 나가는 날 이를 악물고 36홀을 돌았지요. 골프 말고는 스피드 드라이빙도 조금….”

하루에 그렇게 많이 뛰면 피곤하지 않을까. “뛰다가 힘들 땐 택시라도 집어타고 싶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뛰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달리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꼭 혼자 뛰어요.”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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