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이만수(44·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가 월드시리즈 관전평을 보내왔다.
프로야구 1세대 홈런왕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는 98년 초 미국으로 건너가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코치에 오른 ‘공부하는 지도자’.
마이너리그 싱글A부터 시작해 5시즌에 걸친 생생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칼럼을 연재한다.》
▼이만수의 월드시리즈 관전기①▼
올해 월드시리즈는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와 애너하임의 트로이 글로스로 대표되는 홈런시리즈라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4차전까지 3경기가 피 말리는 1점차 승부였고 애너하임이 대승을 거둔 3차전 역시 홈런이 아닌 소총으로 승부가 갈렸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승리의 주역들이 필자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란 점이다.
먼저 24일의 4차전을 살펴보자. 승부처는 샌프란시스코가 3점을 따라붙어 동점을 만든 3회말. 올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시카고에서 필자와 한솥밥을 먹었던 샌프란시스코의 톱타자 케니 로프튼이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공수주 3박자를 갖춘 35세의 베테랑 로프튼은 무사 1루에서 3루선상을 타고 흐르는 재치있는 기습번트 안타를 치고 나갔고 1-3으로 따라붙은 뒤 계속된 무사 1, 3루에선 제프 켄트의 짧은 우익수 뜬공 때 홈을 파고들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역시 로프튼이었다. 이날 경기는 내셔널리그의 규정에 따라 지명타자 대신 투수가 타자로 나오는 경기. 애너하임은 수비는 약하지만 타격이 좋은 지명타자 팀 새먼을 할 수 없이 우익수로 기용했고 로프튼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결과는 새먼이 홈 악송구를 던지는 사이 1루주자 리치 오릴리아마저 2루까지 진루해 동점을 올릴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로프튼은 김치 갈비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 친구들이 많아 간단한 한국말까지 구사한다. 필자와도 죽이 맞아 오랜 친구 같은 막역한 사이다.
반면 2, 3차전은 애너하임의 짜임새 있는 전력이 십분 발휘됐다. 비록 화려한 스타는 없지만 포수 출신 감독 마이크 소시아의 다양한 작전과 과감한 베이스 러닝, 막강 불펜 투수진, 그리고 선수들의 뭉쳐진 의욕이 돋보였다.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한방으로 영웅이 되는 것은 선수들에게 달콤한 유혹이겠지만 애너하임 선수들은 팀을 먼저 생각하는 플레이를 펼쳤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숨은 공신이 있다면 투수코치 버드 블랙이다. 98년 클리블랜드 시절 스프링캠프에서 같이 생활한 적이 있는 그는 늘 연구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투수를 가르칠 때 지휘봉 같은 것을 들고 와서 섀도 피칭을 할 때도 사용하고 투구 밸런스를 맞출 때도 사용하는 것이다.
항상 투수의 편에 서서 생각하는 그는 아무리 중요하고 어려운 경기라도 정해진 투구 수를 지키는 원칙주의자다. 덕분에 시즌 내내 투수들은 강한 어깨를 가질 수 있었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만수 leemansoo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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