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정말로 필요할 때 한방 쳐 주는 ‘국민타자’였고 LG 마무리 이상훈에게서 기적 같은 동점 3점포를 뽑아내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선배 양준혁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 이승엽은 “99년 43호 홈런 신기록을 세울 때보다도 더 기쁘다”며 감격해 했다.
삼성 김응룡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그래서 대타자 아닌가. 시드니올림픽에서 부진에 빠져 있을 때도 일본전에서 한방 쳐낸 게 이승엽이었다. 큰 경기에서 해줄 줄 알았다”고 신뢰감을 드러냈다.
“정규시즌 마지막에 무릎을 다쳤는데 이게 포스트시즌까지 영향을 미쳐 타격의 밸런스를 잃어버렸다”고 부진의 원인을 분석한 이승엽은 “9회 타석에 섰을 때 죽더라도 나 혼자 죽자, 병살타는 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 다음 타자가 타격감이 좋은 마해영 선배였기 때문이다. 변화구를 노렸다”고 홈런을 친 순간을 설명했다.
이제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을 이룬 그에게 남은 과제는 미국 프로야구 진출. 그는 올 시즌 전 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에서 초청선수로 뛰며 일발 장타 능력을 과시해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승엽은 “삼성과의 계약기간 1년이 남아 있고 어머니가 편찮아 내년에는 해외로 진출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뇌수술을 받은 이승엽의 어머니 김미자씨(54)는 10일 대구구장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이 한국시리즈 우승 메달을 보여주는 순간 환한 웃음을 지을 게 분명하다.
대구〓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