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본 손기정옹

  • 입력 2002년 11월 15일 15시 46분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일본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손기정이 베를린에 머물던 동안 일장기를 가슴에 단 것은 경기할 때 단 한번뿐이었다.

당시 여러 가지 기록과 자료를 살펴봐도 손기정은 언제나 양복차림 아니면 일장기 없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손기정 남승룡과 함께 마라톤선수로 출전했던 일본인 시오아쿠가 보관하고 있던 30여장의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마라톤 팀이 베를린 현지에 도착한 것은 대회가 열리기 두달전, 손기정은 경기가 열리는 날까지 코치가 아무리 권해도 일장기가 달린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손기정은 "중요한 유니폼이니 대회당일까지 더럽히지 않고 간직하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리스트들이 서명하는 독일 국빈 방명록에도 '손(그+의)정 KOREA'라고 뚜렷이 적었다. 선수촌 안팎에서 외국인들이 "어디서 왔느냐" 고 물어도 "KOREA에서 왔습니다" 라고 당당히 대답했다.

베를린올림픽에 농구선수로 나갔던 이성구(2002년 10월16일 타계)씨는 "일본인이 손기정에게 사인을 해달라면서 일본의 후지산을 그려 달라고 하면 한국의 금강산을 그려 주곤 했다"고 증언했다.

1935년 제8회 메이지 신궁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2시간 26분42초의 공인 세계최고 기록을 세웠을 때 시상식에서는 일본 국가가 연주 됐다. 이때 손기정은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당시 인솔교사인 양정고보 김창연에게 달려가 "선생님 왜 우리 나라에는 국가가 없습니까? 어째서 기미가요가 조선의 국가입니까?" 흐느꼈다.

손기정은 엄청난 노력가이다. 물론 체격조건으로 보면 타고난 면도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손기정의 우승당시 체격은 167cm 55kg으로 가슴이 두텁고 날렵한 체형, 황영조의 바로셀로나 우승당시의 체격 168cm 57kg과 비슷하다. 그러나 꼭 이것만으로는 우승할 수는 없다. 피눈물 나는 노력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손기정은 "난 신의주에서 자랐기 때문에 독립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독립군들이 바지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면 다리 힘을 키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렇게 훈련했다"고 말했다.

손기정은 늘 배가 고팠다. 오죽 했으면 손기정의 소원은 '한 개 5전짜리 호떡을 원 없이 먹어보는 것' 이었겠는가. 훗날 손기정은 "좀더 잘 먹기만 했으면 더 잘 달릴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두 달 동안에 세 번 풀코스에 출전, 두 차례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던 젊은 시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래서일까. 손기정은 팔순이 넘어서까지도 소고기를 가장 좋아했다.

"나라를 지닌 민족은 행복하다.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그 누가 막겠는가"

해방이후 광복기념체육대회에 태극기를 지니고 입장한 손기정이 그 감격에 겨워 목메어 한 말이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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