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기자가 만난 故손기정옹

  • 입력 2002년 11월 15일 18시 08분


2000년 겨울 어느날 손기정옹을 뵈러 분당의 따님(문영·61)집에 갔다. 집엔 손옹 외엔 아무도 없었다. 손옹은 96년부터 왼쪽다리에 마비 증세(동맥경화증)가 오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해 바깥 출입을 거의 못할 때였다.

“밖에 나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은 데 이렇게 꼼짝을 하지 못하니 원…. TV를 켜도 좋아하는 국악이나 판소리는 안 나오고, 저녁 먹고 책 몇 장 넘기다 보면 곧 잠이 오고, 그러다 새벽 1시쯤이면 또 잠이 깨고…. 그 뒤가 정말 고통이야, 허허허.”

그는 오랜만에 만난 기자를 말동무 삼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기자는 손옹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 드렸다. 그의 눈가에 언뜻 물기가 고였다.

손옹은 베를린올림픽에서 3위를 차지한 남승룡선배(작고)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와는 1912년생 동갑나기지만 양정고 1년 위여서 꼭 ‘선배’라고 불렀다고 것. 그러면서 “일제 강점기 시절 남선배님과 같이 동고동락해 왔는데 세상으로부터 나만 환영받아 늘 마음이 아팠다”고 되뇌었다.

손옹은 “마비 증세 때문에 술 담배도 끊고 걷기 운동을 하는데 영 재미가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백오리길을 달렸던 그가 겨우 100m 가는데 20여분이나 걸려야 하다니…. 손옹은 또 “한 번은 한나절이나 걸어서 겨우 동네 이발소에 갔다가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려 혼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그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그러나 그는 본래 소탈한 성격이었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부축하려 들면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마. 그냥 오빠라고 불러”라고 농을 던지고 사진기자를 만나면 “지금 많이 찍어 놓으라구. 내가 죽고 난 다음 후회하지 말고…”라며 너털웃음을 웃기도 했다.손옹은 “운동하던 시절엔 늘 배가 고팠다”고 회상했다. “1개 5전짜리 하는 호떡을 원없이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그는 “좀 더 잘 먹었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라며 아쉬워했다. 두 달 동안에 세 차례나 풀코스에 출전, 두 차례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던 젊은 시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래서 그런지 그는 팔순이 넘어서까지도 쇠고기를 유달리 즐겼다.그의 팬중엔 유명인도 많다. 보성전문시절 무용가 최승희와 서울 명월관에서 자리를 함께 하기도 했고 고인이 된 운보 김기창 화백과는 서로 팬으로 출발해 나중엔 절친한 벗이 됐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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