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은 식민지 지배정책에 맞서 겨레의 얼을 고취시킨 계기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의 항일투쟁에 불을 지핀 게 바로 이 사건이다.
월계관을 쓰고 시상대에 선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은 1936년 8월25일자 동아일보 2판부터 실렸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즉각 무기정간 되었다. 또 여성동아의 전신인 ‘신가정’은 일장기를 싣지 않기 위해 손기정의 다리 부분 사진만을 게재하고 ‘이것이 베를린마라톤 우승자, 위대한 우리의 아들 손기정의 다리’라는 설명을 달았다가 신동아와 함께 폐간되었다.
귀국길에 싱가포르에서 사건 전말을 전해들은 손기정은 “나의 심경을 대변해준 동아일보에 감사한다. 사건을 주도한 기자들이 고초를 겪고 있어 죄송하다”고 술회했었다.
한국독립투쟁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 사건은 한두 기자의 개인적인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으로 이뤄진 모두의 항쟁이었다. 이는 이해 12월에 작성된 일제의 정부문서 ‘쇼와(昭和)11년 집무보고’에서도 확인된다.
이 문서는 ‘조선민족이 마라톤 우승선수로 인해 받은 충동’이라는 항목에서 ‘…동아일보 사설에서 두 용사의 우승이 조선의 피를 끓게 했고 한 번 일어서면 세계도 손안의 것이라는 신념과 기백을 가지게 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손 선수 유니폼의 일장마크를 고의로 말살한 사진을 게재했다. 이로써 조선이 일본에 승리, 조선독립의 기초가 이루어진 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고 기술했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