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4개 프로스포츠종목(야구,축구,농구,씨름)의 사업자단체와 구단에 대해 불공정거래로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해당주체들은 스포츠계의 특수한 생리를 무시한 조치라고 반발했지만 이는 국내 프로스포츠의 ‘악법’으로 인한 불공정 관행을 시정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이후 프로스포츠의 잘못된 규약들이 고쳐져 선수들의 권익이 신장됐는지, 현재 선수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악법’들은 뭔지 종목별로 알아본다. ▽프로야구
선수와 구단의 관계 및 지위를 규정한 야구규약을 펼치면 선수들을 옭아매는 규정이 즐비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철퇴를 가했던 규정들은 해외진출 아마야구 선수의 국내 프로야구 5년간 복귀금지와 신인 계약교섭권 보유기한 설정.
이 가운데 국내 프로리그에서 뛰지 않고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무대에 진출한 선수가 국내로 복귀할 때 5년간 뛸 수 없다는 규약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한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
99년 해외진출선수부터 적용한 이 규약에 따르면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최희섭(시카고 컵스·이상 99년 진출)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도 국내로 돌아온 때부터 5년간은 무조건 뛸 수 없게 된다. 일단 해외로 떠난 아마야구 선수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외국에서 끝을 보아야 한다는 얘기. 김병현 최희섭을 포함해 송승준(몬트리올 엑스포스) 추신수(시애틀 매리너스) 등 14명의 해외파들이 이에 해당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일사무차장은 “국내야구 발전에 기여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선수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 국내 프로야구를 고사시키는 무분별한 해외진출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변호한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따지면 이는 분명히 ‘직업선택의 자유’와 ‘계약 자유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구단으로부터 지명받은 선수가 2년간 그 구단에 묶이는 것도 문제. 만약 선수가 구단의 지명을 거부한다면 2년간(군복무, 대학원진학은 계약교섭권 보유기한에서 제외) 아무 팀에도 갈 수가 없다. 구단이 지명만 하고 계약을 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않다. 이 경우 그 선수는 2년간 다른 구단으로 갈 수가 없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KBO는 공정거래위의 시정명령에 반발, 현재 이의 신청을 제기해놓은 상태. 하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조만간 시정을 해야 한다.
이밖에 99년 만든 FA(자유계약선수) 규정도 문제다. 당시 선수들은 국내에도 FA가 도입됐다고 해서 반겼지만 실제로는 구단간의 원활한 FA영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떤 구단이 FA를 데려오려 할 경우 전 소속팀에 지불해야 하는 보상금(전년도 연봉의 450% 또는 전년도 연봉의 300%와 보상선수 1명)이 엄청나기 때문.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의 나진균사무국장은 “이 제도의 취지는 선수들이 일정기간 소속팀에 봉사한 뒤 원하는 팀으로 더 좋은 조건에 자유로이 이적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보상금을 대폭 낮추거나 메이저리그처럼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로농구
신인 계약교섭권 보유기한이 야구보다 많은 5년이나 된다. 신인계약금이 없는 것도 문제.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프로농구 출범 전 발생한 실업팀들의 고액계약금 폐해를 막기 위해 프로에선 입단계약금을 아예 없애고 신인 연봉을 8000만원으로 제한했다. 그랬더니 계약금을 보상하기 위해 ‘뒷돈’과 CF계약 등의 ‘변칙’이 성행하고 있다. 퇴직금이 없는 운동선수들은 프로입단때 받는 계약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돈’을 챙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계약금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프로축구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올해 획기적인 조치들을 가동시켰다. 신인과 기존선수 스카우트를 완전 자유계약제로 전환한 것. 이는 드래프트 폐해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계 화합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야구와 농구 등 다른 종목과 달리 프로축구선수들은 내년부터 국내외의 다른 구단에 마음대로 갈 수가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의 길이 열린 것.
그러나 대리인(에이전트) 제도가 금지돼 선수가 직접 구단과 대면계약해야하는 문제는 시정되어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선수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야구 선수협 출범 권익향상 전기 마련
국내 스포츠계에서 ‘자유’와 ‘권리’를 주장한 프로선수들의 사례는 야구쪽에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임선동(29·현대 유니콘스·사진). 연세대 4년 때인 95년 일본 프로야구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한 임선동은 앞서 자신을 지명했던 LG의 반대로 일본행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LG를 상대로 ‘지명무표확인본안소송’을 내 96년 5월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 소송은 ‘상대적 약자’인 선수가 구단을 상대로 법적소송을 제기해 승리, 직업선택의 자유를 처음으로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컸다.
하지만 임선동은 “양국의 지명권을 존중한다”는 한일프로야구기구의 협조 때문에 일본 프로야구 선수 등록이 끝내 좌절, 법원의 조정에 따라 97년부터 2년간 LG에서 뛴 다음 99년 자신이 원하던 현대로 팀을 옮겼다.
임선동이 ‘1인의 승리’라면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사건은 ‘다수의 승리’. 99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슈퍼게임중 은밀하게 뜻을 모은 선수들은 2000년 1월22일 기습적인 창립총회를 갖고 구단에 대항하는 조직을 출범시켰다. 국내 구단과 선수간의 관계를 ‘일방적인 종속관계’로 규정한 선수들은 선수협을 통해 자유계약선수제(FA)와 해외진출 보장, 최저연봉 상한 등에서 자신들의 의지를 일부 관철시켰다.
98시즌이 끝난 뒤 삼성에서 해태(현 기아)로 트레이드된 양준혁(삼성)은 일방적인 트레이드에 반발하며 미국행을 선언했으나 구단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구단의 횡포를 뼈저리게 느낀 그는 1년뒤 선수협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3대 스포츠 주요규정 비교 | |||
프로야구 | 프로축구 | 프로농구 | |
자유계약선수(FA) 충족기한 | 9년 | 내년부터 제한없음 | 5년 |
해외진출 충족기한 | 7년 | 〃 | 없음 |
트레이드 거부권 | 없음 | 없음 | 없음 |
신인 드래프트제 | 1차지명(연고지역내 고졸선수중 한명)2차지명(구단별로 전년 성적 역순) | 모든 선수 자유계약 | 구단별로 전년 성적 역순으로 지명 |
팀선택의 자유 | 없음 | 있음 | 없음 |
대리인(에이전트)제도 | 금지 | 금지 | 금지 |
다년연봉계약 | 금지(실제 다년계약이 이뤄지지만 KBO에는 1년계약서만 제출) | 모든 선수 인정 | FA부터 인정 |
신인 계약교섭권 보유기한 | 2년(대학진학과 군복무기간은 제외) | 없음 | 5년(KBL지명거부시 5년간 프로에서 뛸 수 없음) |
경기장 입장료결정주체 | KBO 이사회 | 구단별 차등결정 | 구단별 차등 결정 |
대외활동(광고출연 등)제한 | 구단 초상권 보유 | 구단 초상권 보유 | KBL 초상권 보유 |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