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북녀(北女)다. 1999년 부모와 두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고향 청진을 탈출, 중국을 통해 귀순했다. 남쪽에서 생활한 지 벌써 3년째. 그 짧지않은 시간은 그를 남쪽 여자로 바꿔놓았다. 이제 그는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한편으로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래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바로 ‘빙판의 꿈’이다. 그는 북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대표선수였다. 지금도 그는 빙판을 달린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것 뿐이다.
지난 주말 오후 8시 태릉선수촌. 낡은 흰색 프라이드 한 대가 빙상장 앞에 도착했다. 훤칠한 키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성이 큰 가방과 스틱을 꺼내 둘러메고 차에서 내렸다. 탈의실로 들어간 그는 잠시 후 아이스하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와 힘차게 얼음을 지치기 시작했다.
황보영(23). 내년 1월 동계아시아경기대회(일본 아오모리)에 한국대표로 출전하는 그를 만났다.
“북한과 1월31일 경기를 치릅니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정란이, 봉련이 등 옛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그들이 보면 제가 배신자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황보영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다. 겨울만 되면 강이든 연못이든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추운 곳,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겨울만 되면 스케이트를 탔다. 그러다가 스틱을 잡았고 종성 신흥고등중학을 거쳐 92년부터 97년까지 김책제철체육단에서 선수로 뛰며 북한대표로까지 발탁됐다. 동계아시아경기에 출전할 북한 대표선수 가운데 신정란은 고교동기생. 김봉련과도 친하게 지낸 사이다.
“북한에는 여자아이스하키실업팀 격인 도대표팀이 4개나 있고 아마추어팀인 구락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아직 중국보다는 약하지만 일본은 충분히 꺾을 수 있는 실력일 겁니다.”
그는 “한국에서 다른 스포츠는 번성하는데 정말 재미있는 여자아이스하키는 왜 인기도 없고 지원도 전혀 없는지 모를 일”이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래서 걱정이다. ‘북한과의 경기에 모두 신경을 쓸텐데 만일 대패라도 한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서다.
황보영의 하루는 눈 코 뜰새없이 바쁘다. 남쪽에서의 그의 직업은 간호조무사. 새벽밥을 먹고 목동 집에서 나와 직장인 강남 제중치과의원에 도착하면 8시.
오후 7시에 일이 끝나면 훈련 스케줄이 그를 기다린다. 8시부터 10시까지 연습하고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는 시간. 이 때쯤이면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지만 그래도 그는 남쪽 생활이 즐겁다.
“남동생 하나는 현재 고려대에 재학중입니다. 다른 동생 둘도 공부를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내가 열심히 벌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아이스하키를 집어치울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어디 그럴 수 있나요. 아이스하키는 나의 ‘존재이유’나 다름없잖아요.”
지난 10월 부산아시아경기에 출전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황보영은 눈물을 흘렸다. 소박한 고향 사람들 생각도 났다. 남쪽 생활의 고충 가운데 하나는 남쪽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 아직 적응이 안된다는 점. 미팅으로 만난 남자들이 몇 번 데이트하고 나면 스킨십을 요구하는 통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것.
“그래도 이렇게 기자분 앞에서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북한에는 없습니다. 아직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한국에는 자유가 있어서 좋아요.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해 아이스하키 지도자가 되고 싶은 꿈도 있고요.”
황보영은 올해 대학입시에서 고려대 체육교육학과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렇지만 내년에 다시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다. 결혼은 지도자의 꿈을 이룬 뒤 2010년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했으면 한다.“몇번 만나고 나면 키스나 하려고 덤비는 남자는 싫습니다. 키도 크고 터프하면서 내가 꿈을 이룰 때까지 옆에 있어줄 가슴 넓은 남자는 어디 없을까요?”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