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94년 4월9일 LA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지 8년여. 이 때부터 빅리그에 진출한 7명의 선수는 모두 투수였지만 이날 ‘코리안 빅맨’ 최희섭(23·시카고 컵스)이 타자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타석에 서는 이정표를 세웠다. 98년 고려대를 중퇴하고 태평양을 건넜던 그로선 마이너리그에서 4년간 고군분투한 끝에 마침내 꿈을 이룬 것이다.
지난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아시아 선수는 미국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로 깼다면 최희섭은 1m96에 100㎏이 넘는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파워를 앞세워 서양인의 전유물이었던 홈런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최희섭의 데뷔 무대는 공교롭게도 박찬호가 96년 첫 승을 올린 시카고의 리글리필드. 7회초 프레드 맥그리프 대신 교체 1루수로 나간 최희섭은 7회말 데뷔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최희섭은 닷새 후인 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장해 7타석째만에 자신의 첫 안타를 132m짜리 초대형 홈런으로 장식하며 동양인 거포의 등장을 알렸다.
최희섭이 9월 한달간 거둔 성적은 24경기에서 50타수 9안타로 2할에도 못미치는 타율 0.180에 2홈런 4타점 15삼진. 그러나 최희섭은 새미 소사를 비롯, 쟁쟁한 거포들이 즐비한 시카고 타선의 클린업 트리오에 당당히 포진하며 현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사실 최희섭은 지난해부터 컵스 구단이 미래의 4번타자감으로 지목해 특별관리해온 기대주. 13년간 1루를 지켰던 마크 그레이스를 지난해 방출하고 6개구단에서 30홈런 이상을 친 진기록의 주인공 맥그리프까지 올 시즌이 끝난 뒤 내보낸 것은 최희섭에 대한 구단의 기대를 짐작케 한다.
LA다저스의 베테랑 에릭 캐로스가 올 겨울 새로 들어왔지만 내년 시즌 최희섭의 풀타임 메이저리거 전선에는 지장이 없을 전망이다.
동양인 선수가 노모 히데오(95년)-사사키 가즈히로(2000년)-이치로(2001년)까지 3번이나 신인왕에 올랐지만 모두 일본프로야구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메이저리그의 관행에 따른 중고 신인왕. 만약 최희섭이 내년 신인왕이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동양인 첫 신인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아듀 ‘2002스포츠’▼ |
- <1>히딩크 신드롬 - <2>골프 최경주…‘탱크는 멈추지 않는다’ - <3>프로야구 삼성 첫 우승 - <4>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 - <5>코리아 우먼 파워 - <6>김동성 金 박탈 |
■최희섭 말·말·말
▽떨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처럼 되지 않았다. 야구하면서 이렇게 긴장하기는 처음이다(최희섭)-9월4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최희섭의 홈런은 1개가 아닌 2개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9월9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 데뷔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한 최희섭의 홈런 비거리가 엄청나다며.
▽오늘 주일인데 교회에 못가 마음속으로 기도했다(최희섭)-첫 홈런을 쳤을 때 왼손을 입에 댄 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 홈런 세리머니에 대해.
▽최희섭의 500피트짜리 홈런을 어찌 잊겠는가(시카고 컵스 더스티 베이커 신임 감독)-지난해 3월2일 최희섭이 시범경기에서 당시 베이커 감독이 지휘하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6회 장외 3점홈런을 날렸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