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의 간판스타 이형택(27·삼성증권)에게 그동안 앤디 로딕(21·미국)은 ‘천적’이었다. 2년여의 그리 길지 않은 세계남자프로(ATP)투어 생활 동안 지난해까지 무려 5차례 맞붙어 모두 패했기 때문. 하지만 이형택은 마침내 높은 벽을 넘었다.
8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ATP투어 아디다스인터내셔널(총상금 38만달러) 단식 16강전. 세계랭킹 85위 이형택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보였던 세계 10위 로딕을 2시간15분 만에 2-0(7-6, 7-5)으로 완파하는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이 대회 8강전 진출.
이형택이 세계 ‘톱10’에 드는 선수를 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 US오픈 2회전에서 당시 세계 11위였던 프랑코 스퀼라리(아르헨티나)를 한 차례 꺾은 바 있다.
이형택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친 게 주효했다”며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친 것이 잘 먹혀들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7-6으로 힘겹게 따낸 이형택은 2세트 들어 0-3까지 뒤져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서브 앤드 발리와 위력적인 스트로크를 앞세워 추격전을 펼쳤고 5-5로 동점에 성공한 뒤 내리 2게임을 따내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날 이형택의 승리는 하늘도 도왔다. 평소 로딕은 최고 시속 210㎞를 넘나드는 대포알 서브가 주무기였지만 비가 내린 데다 2세트 들어 강한 바람마저 불어 서브 구사에 애를 먹었고 스트로크도 약해진 것.
이형택은 한때 세계 1위까지 올라갔던 세계 3위 마라트 사핀(22·러시아)과 9일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1m93의 장신 미남 스타인 사핀은 메이저대회인 US오픈을 비롯해 통산 단식 타이틀을 11차례 따낸 강호. 그러나 최근 이형택이 거센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반면 사핀은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해볼 만한 상대라는 게 삼성증권 주원홍 감독의 예상이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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