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결코 라켓을 놓지 않았던 그는 하루 12시간 볼을 쳤을 정도의 연습벌레. 춘천 봉의고와 건국대를 거치는 동안 가방에 늘 아령을 넣고 다니면서 힘을 길렀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봉의고 3년 때는 42연승과 함께 6관왕의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이형택의 우승은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 엮어낸 값진 승리. 2000년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꿈의 16강 신화를 이뤘으며 2001년에는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ATP투어 결승에 진출했다. ‘마의 벽’이라던 세계 랭킹 100위안에 처음으로 진입해 2001년 8월 역대 최고인 60위까지 이름을 올린 것도 역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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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그는 노 골드의 수모를 안았다. 테니스를 시작한 뒤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동계훈련에 매달렸고 지난 연말 요코하마 챌린저대회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재기의 시동을 걸었다.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파워테니스의 바탕을 마련했고 다채로운 서브와 네트 플레이도 연마했다.
같은 동양인인 파라돈 스리차판(태국)의 활약도 큰 자극. 한 때 자신보다 한 수 아래였던 스리차판이 지난해 투어 2승을 포함해 세계 10위권으로 치솟으면서 ‘나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테니스 투어대회 1승은 미국 프로골프(PGA)투어 1승과 맞먹는다고 한다. 오히려 나흘 동안 승부를 겨루는 골프는 하루를 못 치더라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테니스는 ‘부진=패배’를 의미하므로 더욱 힘들다. 그래서 국내 테니스인들은 한국 테니스 100년 역사 속에 처음 맛보는 이형택의 정상 등극을 지난해 최경주의 미국PGA투어 우승에 버금가는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이형택의 모교인 건국대는 이형택이 호주오픈을 마치고 귀국하는대로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이형택 일문일답…“세계 랭킹 50위 돌파 목표”
“아직도 실감이 안 나네요.”
생애 첫 투어대회 정상에 오르고도 이형택은 여전히 자신이 이룬 일이 믿어지지 않는 듯 보였다. 호주오픈 출전을 위해 12일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이동한 이형택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우승 소감은….
“얼떨떨하다. 솔직히 우승은 기대하지 않았다. 우승은 정말 실력 있는 선수와 싸워 이겨야 할 수 있기에 어렵다고 생각했다. 주원홍 감독께 감사 드린다. 삼성의 아낌없는 지원도 고맙고 무엇보다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해주신 어머니께 영광을 돌린다.”
―투어대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해외무대에서 많은 경기를 하면서 경험과 자신감을 쌓은 덕분이다. 공격적인 테니스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각오로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친 것도 주효했다.”
―보완해야할 점은.
“지금의 페이스를 꾸준하게 이어가야 하는 게 과제다.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 속에서 언제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적인 면에서도 밀리지 않아야 한다.”
―경기 전 무슨 꿈이라도 꿨는가.
“며칠 전 내가 우승컵을 들고 웃고 있었다는 형수님의 꿈 얘기를 듣고 힘을 냈다.”
―호주오픈을 비롯한 앞으로 목표는.
“게임마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호주오픈 첫판에서 붙는 데이비드 페러는 잘 모르는 상대인데 스페인 출신이므로 스트로크 위주일 것 같다. 상승세를 앞세워 일단 세계 50위 이내에 진입하고 싶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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