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빙벽등반은 얼어붙은 폭포를 오른다고 해서 ‘빙폭 등반’으로 불린다. 박영석 엄홍길 같은 세계적인 산악인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자연조건에 힘입은 바 크다.
빙벽등반의 맛은 온냉을 오가는 온도의 차이에서 오는 ‘오묘한 짜릿함’. 차가운 얼음벽과 달아오른 인간의 몸이 빚는 한편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비오듯 쏟는 땀은 그 자연스런 부산물일 뿐이다.
빙벽등반 마니아 홍석배씨(38·치과의사)는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한 번 찍을 때마다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며 “날씨가 포근할 때도 언제쯤 오를 수 있을까 궁금해 일부러 폭포를 찾아가 빙질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얼음폭포를 오르는 ‘빙폭등반’엔 주의할 점이 많다.
겉에서 보기엔 커다란 얼음덩어리 같지만 자세히 보면 종유석처럼 여러 얼음기둥이 합쳐저 있다. 게다가 얼지않은 안에는 물이 흘러 빙폭 속이 빈 경우가 많아 사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빙벽등반의 메카격인 구곡빙폭(강원 춘천시 남산면)에서 등반하던 마니아가 50여톤의 얼음덩이와 함께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대표적인 예.
빙벽등반은 매년 1∼2월이 제철. 국내에 즐길 수 있는 곳은 50여곳이 있다. 아시아 최고의 높이(360m)를 자랑하는 토왕성 폭포 빙벽은 상하단 두 폭으로 나뉘어 있어 세계 최고의 빙벽전문가들인 프랑스 산악인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초보자에겐 도봉산 회룡빙폭, 수락산 금·은류빙폭, 운악산 무지개빙폭이 좋고 중급자는 강촌 구곡빙폭, 불암산 경수사빙폭, 설악산 응당빙폭, 북한산 구천은빙폭, 감악산 은계빙폭에 도전해볼만 하다.
상급자에겐 설악산이 제격. 토왕성빙폭을 비롯해 대승, 소승, 소토왕 등 4대 빙폭이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 강원도 인제군 매바위, 경북 청송군 부동면 항리에 인공 빙벽이 형성돼 얼음 등반객을 기다리고 있다.
빙벽등반을 위해선 전문 등산학교를 거치는 것이 좋다. 김용기 등산학교(02-703-6969), 코오롱등산학교(02-753-8005), 정승권 등산학교(02-990-5014), 한국등산학교(02-2203-3471) 등이 있다.
전창기자 jeon@donga.com
▼“컨디션 안좋을땐 과감히 중도포기해라”…전문가가 말하는 주의사항
98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동계 월드 X게임대회’ 빙벽등반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정승권씨(43·사진)는 “일반 암벽등반과 빙벽 등반은 공통분모 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더 많다”고 강조한다.
그는“암벽은 맨 손으로 오르지만 폭포가 얼어붙은 빙폭은 아이스바일이나 아이젠 등 전문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며 “이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92년 토왕성 빙벽등반을 소재로 한 ‘토왕의 환상’이란 중편소설을 써내기도 한 그는 “빙벽에 매달려보면 세상이 달라보인다”라고 단언했다.
정씨가 권하는 빙벽등반 수칙은 간단하다. 경험 많은 선배를 따를 것, 단독등반은 절대 금물이며 적어도 2,3명이 한조를 짜서 등반에 나설 것 등이다. 등반시기는 3한4온 중 사온이 시작되고 이틀째가 좋다. 너무 추우면 아이스바일이나 아이젠이 얼음에 박히지 않지만 이 때가 되면 얼음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아이젠, 빙벽화(플라스틱보다는 발목을 움직이기 좋은 가죽제품이 좋음), 아이스바일, 안전벨트, 헬멧, 장갑 등은 필수.
일반등반과는 달리 빙벽등반은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컨디션이 안좋으면 과감히 등반을 포기해야 한다.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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