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축구협회, 축구만큼만 해라

  • 입력 2003년 1월 22일 18시 06분


거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4강 신화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실력있는 선수들을 찾아내 그들이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다. 그런데도 국내 축구인들은 이 당연한 원칙을 실천하지 못해 히딩크 감독이 오기 전 5차례의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학연, 지연 등에 얽힌 편향된 시각이 문제였다.

최근 축구계가 소위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발단은 대선 선거 기간중 후보로 출마했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사퇴 서명을 주도한 ‘서명파’에 대해 축구협회에서 중징계를 내린 것. 새해 들어서도 징계 철회가 이뤄지지 않자 서명파를 중심으로 한 축구계 ‘야당’인사들이 축구협회를 공격하고 나섰고 이제 서로 인신공격형 발언까지 난무하는 판이다.

두 진영의 입장차는 크기만 하다. 조중연 축구협회 전무를 주축으로 한 ‘여당’측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며 “그래도 협회는 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측은 “당시 정회장 퇴진 요구는 정당했고 따라서 ‘사면’이 아니라 ‘징계 철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선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축구인 협의회를 만드는 방안까지 검토한다는 얘기이니 이대로라면 한국축구의 앞날은 뻔하다.

양쪽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작 팬들을 씁쓸하게 하는 것은 ‘나만이 옳다’는 식의 태도다. 한 쪽은 ‘회장님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정회장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다른 쪽은 “축구협회는 축구인의 것이므로 축구인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며 정회장 퇴진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화와 타협은 없고 아집과 독선만 설친다.

지난해 6월 월드컵축구에서 한국은 뜨거운 국민적 성원을 업고 세계 4강에 올랐다. 그 때는 축구계도 한 덩어리가 됐다. 그로부터 불과 7개월만에 한국축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차라리 히딩크 감독을 축구 행정가로 영입할까.” 한 축구인의 자조섞인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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