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34·전남)의 별명 ‘황새’는 비쩍 마른 몸에 키만 멀대같이 크다고 해서 붙여진 것. 가난했던 아버지는 이 별명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 했다. 용문중학교 시절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가 목발을 짚고 경기장으로 찾아왔다. 아버지는 깁스를 한 탓에 경기 내내 서서 아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봤다. 황선홍은 “그때 난 90분 내내 울면서 뛰었다”며 고인이 된 아버지를 회상했다.
9일 오후 서울 타워호텔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며 은퇴를 공식 선언한 황선홍. 그는 기자회견 도중 자주 허공을 바라보았다. 축구를 시작한 지 올해로 24년, ‘축구선수 황선홍’을 마감하는 이 자리에서 그는 아버지가 처음 사준 비닐 축구화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지난해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고 ‘아버지’를 외쳤을 때처럼….
황선홍이 은퇴를 결심한 것은 부상 때문. 무릎 인대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고 이 밖에도 아킬레스건 허벅지 등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왔다. 월드컵이 끝난 뒤 일본 가시와 레이솔로 복귀했지만 부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퇴출. 이어 지난해 9월 전남과 계약하면서 국내무대로 돌아왔으나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황선홍 축구는 곧 한국축구였다. 첫 태극마크를 단 아시안컵대회 일본전에서 헤딩골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신고한 게 건국대 2년 때인 88년 12월. 이후 A매치에 103회 출전해 50골을 뽑는 등 아시아 최고골잡이로 명성을 날렸다. 국내 프로무대에는 64경기에 출전해 31골 16도움. 일본프로축구 J리그 세레소 오사카 시절에도 99년 24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70경기에서 42골을 기록한 그다.
그러나 운동선수는 언젠가는 그라운드를 떠나야 한다. 황선홍도 그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황선홍은 그 숙명의 순간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생각이다. 바로 지도자의 길이다. 전남도 그를 코치로 영입했다. 이에 따라 터키 전지훈련 중인 전남 선수단이 돌아오는 대로 2군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황선홍이 떠나면 그 뒤를 이을 한국팀의 골잡이는 누가 될까. 황선홍은 이날 회견에서 “차두리 설기현 이동국을 꼽고 싶다”며 “재능 있는 선수들이고 젊기 때문에 발전가능성이 많지만 자기관리 등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선홍은 은퇴결심을 굳혔던 최근 전남에 “그동안 받았던 3개월치 급여 6000만원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구단은 이 돈으로 ‘황선홍 장학회’를 세워 전남지역 유소년축구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월드컵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다. 2002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고 가능하면 우승까지도 이뤄보고 싶다.”
‘황새’의 날개는 아직 접히지 않았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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