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국전력이 해체를 선언한뒤 유일한 실업팀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제일 유리마저 13일 팀해체를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프로야구 2군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상무팀만이 명분상 실업팀으로 남아 있는게 전부이다.
사실상 실업야구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실업야구는 지난해까지만해도 포스틸, 한국전력, 제일유리등 4개팀이 간신히 실업리그를 운영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아마야구를 이끄는 대한야구협회의 재정 궁핍과 실업팀을 운영하는 기업체들이 경기전망이 좋지 않아 팀 운영에 어려움이 따르는데다 실업리그 참여가 프로야구에 밀려 유명무실화되면서 팀운영에 필요성을 못느끼면서 팀해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실업야구는 한국 프로야구의 모태나 다름없다.
지난 60년대 실업연맹이 창설된 이후 은행과 대기업이 주축이 되어 10개팀 이상이 리그에 참여하며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이전까지 한국 야구를 대표하던 실업야구였다.
60-70년대 실업야구가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릴때 프로야구의 성공을 확인했고, 삼성의 김응룡, 두산 김인식, LG의 이광환, KBO홍보위원 선동열등 다수의 감독과 선수들이 실업팀 출신으로 프로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프로야구의 기반을 다졌다.
여기에 실업팀 현대 피닉스가 프로구단 현대를 창단시키는 교두보를 만드는등 프로야구의 근간을 이뤘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인기에 밀려 실업야구는 팬들에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고교, 대학야구에 밀리는데다 메이저리그가 우리들의 안방을 차지하면서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실업야구는 한국야구의 역사속에서나 찾을수 있게 되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사회인 야구가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의 실업야구와 비슷한 일본 사회인 야구는 최고의 인기를 끄는 일본프로야구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데다 프로무대에 우수 선수를 공급하는 공급자 역할은 물론 사회인 야구 출신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일본대표로 활약하는등 야구를 생활스포츠화 시키는데 크게 일조하며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제공:http://www.enter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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