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단 한 사람. 팀의 맏언니 조혜진(30)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벤치에서 일어나 혼자 라커룸으로 향했다. 나이 서른에 비로소 이뤄진 ‘우승 잔치’. 체육관에 축포가 터지고 우승기념 사진촬영이 이어졌지만 그는 마냥 라커룸에서 눈물을 훔쳤다. 92년 당시 상업은행에 입단해 꼬박 12년째 한 팀에서 뛰고 있지만 우승은 이번이 처음. 조혜진은 “막상 우승하고 나니 옛날 같이 뛰었던 선배들 생각도 나고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혜진은 여자프로농구에서 전주원(31·현대) 다음으로 고참. 조혜진은 하마터면 두 번이나 농구를 그만둘 뻔했다. 실업 9년차이던 2000년 그는 95년 수술한 무릎 부상이 재발해 운동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3개월 넘게 벤치프레스와 씨름을 한 끝에 다시 일어섰다.
2002년엔 더욱 상황이 심각했다. 자꾸 숨이 차고 어지럼증이 생겨 병원에 찾아갔더니 진단 결과는 악성빈혈.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인의 절반밖에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혜진은 ‘우승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만둘 수는 없다’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빈혈이 심해질 때면 수혈을 받아가면서도 코트에서 뛰었다. 다행히 요즘엔 건강을 많이 되찾은 상태.
조혜진의 체력을 도맡아 관리하는 이준 코치는 “혜진이는 정말 독종이다.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남자들도 해내기 힘든 운동량을 아무런 불평 없이 소화해낸다”며 혀를 내두른다.
조혜진은 이번 겨울리그를 끝으로 코트를 떠날 생각. 체력도 떨어진데다가 좋은 후배들이 많아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라고 믿고 있다. 은퇴 후의 계획을 묻자 “결혼하려면 애인부터 만들어야 하는데…”라며 수줍게 웃는다.
그러나 박명수 감독이 그를 놓아줄지 의문이다. 박 감독은 “많이 뛰지 않더라도 혜진이가 솔선수범하면 후배들이 꼼짝 못해요. 혜진이가 있을 곳은 농구코트입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은행은 24일 춘천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우리금융그룹배 2003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국민은행 세이버스와의 경기에서 108-90으로 승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조혜진은 2쿼터 2분16초경 홍정애의 골밑슛을 블록해 여자프로농구 통산 7번째로 100 블록슛 기록을 세웠다.
국민은행은 6연패에 빠지며 현대 하이페리온과 함께 공동 4위로 추락했다.춘천=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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