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작전 감독으로부터 “정상적인 경기를 하라”는 지시 이외에는 별다른 작전이 없었던 SK 빅스 선수들은 몸을 풀러 라커룸에서 경기장으로 나서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관중의 숫자나 홈팀 관계자의 숫자나 비슷하겠지’하며 텅빈 관중석을 생각했던 그들은 등짝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날 승리는 그 어떤 것보다 관중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들도 놀랐어요. 이겨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너무 고마워서요”. 문경은의 말이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모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그 어떤 큰 승리보다도 이날 만큼은 홈관중을 위해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행복해했다. 자신의 팀이 6강에서 탈락했다는 사실도 그 순간은 중요치 않았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은 문경은에게 희비가 엇갈린 한 시즌이었다. 부산아시아경기 당시 그의 3점슛이 폭발하지 않았던들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 감격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대표팀에서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뛰었구요. 그리고 마지막 아시아경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꼭 우승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광스런 우승의 휴유증은 그의 부상 재발로 이어졌다. 사실 그는 삼성 소속이던 5년전부터 왼쪽 아킬레스건이 좋지 않았다. 전문의는 그에게 수술후 1년간의 재활을 권유했다. 지금도 그와 같은 휴식기가 필요하지만 서른을 넘긴 나이에 1년 간의 공백은 선수생활의 마감을 가져올수도 있기에 그는 매 경기마다 소염제와 물리치료로 순간적인 고통을 잊으며 뛰고 있다.
올 시즌 문경은을 두고 “이제 옛날같지 않아”라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 중반까지 TG의 데이비드 잭슨에게 3점슛 선두를 내주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토종 3점슛의 자존심이었는데…. 문경은은 지난 일요일 6개의 3점슛을 쏴 대며 3점슛 지존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날도 얼음 한봉지가 그의 왼쪽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던 그는 씨익웃으며 말했다. “5년은 더 뛰어야죠.”
한선교/방송인 hansun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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