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게으르다는 의미는 마냥 논다는 게 아니라 부하 직원의 장점을 살리는 대신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뜻일 게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야구계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통용된다. 겨우내 하와이에서 두달여동안 해외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두산 김인식감독. 오랜만에 잠실구장에서 만난 그로부터 바람직한 야구 지도자상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다.
야구계의 소문난 덕장인 그는 올들어 ‘재활용 공장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간판타자 우즈와 지난해 에이스 역할을 했던 레스가 일본프로야구로 빠져나갔고 마무리 진필중이 기아로 현금 트레이드돼 두산은 전력에 큰 구멍이 뚫린 상태. 그러나 김감독은 곽채진을 기아에서 데려와 팀내 2,3선발을 다툴 정도로 키운 것을 비롯, 성영재 권명철 손혁 김창희 이리키 등 한때 용도 폐기 판정을 받았던 선수들로 새롭게 팀을 만들었다. 꼴찌 후보로 여겨졌던 두산이 시범경기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는 것은 이들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
그 숨겨진 비결은 무엇일까. 김감독은 손발이 척척 맞는 코치들에게 공을 돌렸다. 어느새 9년째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춘 두산 코치진은 이제 눈빛만으로도 서로 통하는 사이. 이들은 인화를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하는 김감독의 ‘교시’를 받들어 선수의 사생활까지 보살피는 형님 역할을 하고 있다.
성적 나쁜 선수나 2군에 내려가는 선수가 있으면 기분이 상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김감독은 코치들에게도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대타를 쓸 경우나 투수를 교체할 때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 담당 코치들이 경기의 흐름을 파악해 미리 준비하는 팀이 바로 두산이다.
똑똑한 상사에 견줄 수 있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보다는 실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선수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코치가 최고의 지도자라는 게 김감독의 지론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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