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무술왕' 막 오른 이종격투기 시대

  • 입력 2003년 4월 3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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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열린 제1회 SPIRIT MC 이종격투기 대회 예선 A조 결승전에서 백종권 선수가 강대중 선수의 목을 조르고 있다. 백 선수가 이겨서 26일 열리는 본선 8강전에 진출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지난달 30일 열린 제1회 SPIRIT MC 이종격투기 대회 예선 A조 결승전에서 백종권 선수가 강대중 선수의 목을 조르고 있다. 백 선수가 이겨서 26일 열리는 본선 8강전에 진출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열광하는 수천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두 사람이 팔각의 링에 올라선다. 그리고 싸우기 시작한다. 피가 튀고 뼈가 꺾인다.

한 사람이 거칠게 상대를 던져 쓰러뜨린 뒤 그 위에 올라타 앉아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주먹으로 마구 때린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끝장이다. 등을 보이면 발차기가 날아오고 무릎을 꿇으면 뒤에서 목조르기가 시작된다.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달 29, 30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 이종(異種)격투기대회 SPIRIT MC(우승상금 3000만원)의 경기 모습이다.》이종격투기란 선수가 맨몸으로 링에 올라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시합. 국부 가격과 눈 찌르기, 깨물기 등 몇 가지 외에는 모든 싸움 기술이 허용된다. 이 때문에 태권도 유도 복싱 가라테 킥복싱 특공무술 유술(실전 유도) 등 모든 유파의 고수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심지어 특정 유파 전문선수가 아니라 ‘스트리트 파이터’라고 소개된 거리의 싸움꾼도 링에 올랐다.

각기 다른 무술을 연마한 사람들의 실전 경연장이라는 의미에서 이종격투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든 싸움 기술이 허용된다는 뜻으로 ‘무규칙 격투기’라고도 불린다.

한국은 레슬링이나 유도 등 종목별로 선수 수준만 볼 때 세계에서 알아주는 격투기 강국. 그러나 정작 단일 격투기의 인기는 높지 않다. 팬들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오래 전부터 식상해왔다. 19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리다 그 후 차츰 인기가 시들해진 프로레슬링과 복싱이 그 예.

이 틈을 비집고 이종격투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격투기가 한국에 상륙했다. 피 튀기는 맨주먹 싸움이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팬들 앞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경기를 지켜본 20대 한 젊은 관객이 이렇게 말했다.

“수천년 전 로마 콜로세움에서 벌어졌던 검투사들의 결투를 보는 기분이다. 무자비하고 치열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끓어오른다. 내가 원했던 진짜 격투기가 바로 이런 것이다.”

●2003년 불어닥친 이종격투기 열풍

지난해까지 이종격투기는 인터넷 동호회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어렵게 구한 일본 및 미국의 격투기 시합 동영상을 나눠 보는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그러다가 올해 2월 위성 및 케이블TV 방송인 SKYKBS스포츠가 일본의 대표적인 무규칙 격투기인 ‘PRIDE FC’와 ‘K-1’(공수도 복싱 킥복싱 무에타이 등 서서 싸우는 격투기 가운데 최강자를 가리는 시합), 미국의 대표적 이종격투기 대회인 ‘KOTC’(King of the Cage ·8각의 철창 안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시합)를 방송하기 시작하면서 팬이 크게 늘었다. 이 가운데 K-1은 62개 케이블 위성 채널 프로그램 중 시청률이 10위 안에 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자극 받은 다른 스포츠채널도 지난달부터 한국 이종격투기와 복싱 및 해외 레슬링 등을 경쟁적으로 방송하고 있다.

인터넷에 형성된 격투기 동호회 사이트만도 수백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대표적 이종격투기 사이트인 ‘쌈박질클럽’(cafe.daum.net/ssambakzil)은 회원 숫자가 4만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29, 30일 한국에서 처음 열린 프로 이종격투기 대회 SPIRIT MC 예선전에서도 격투기의 인기가 드러났다. 지난달 초 있었던 선수 모집에 무려 131명이 대회 참가 신청을 하더니 29, 30일 경기에는 이틀 동안 3000명이 넘는 관중이 모였다.

경인방송 WWE레슬링 해설자 천창욱씨(33)는 “그 동안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종격투기 팬의 저변이 TV 방송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를 합치면 팬은 2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초적 본능’이 링에 오르다

이종격투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저게 무슨 스포츠냐” “저렇게 잔인한 걸 누가 보느냐” “이런 무자비한 시합을 정부가 허락하느냐”라며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이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3년 전부터 마니아가 됐다는 회사원 조현수씨(34). “누군가 나 대신 링에 올라 싸워준다는 느낌이 듭니다. 피 튀기는 시합을 보면 왠지 내가 링 위에 올라 싸우는 것 같습니다.”

그는 최근 일본 격투기계에서 ‘괴물 파이터’로 불리는 밥 샵(2m5, 170㎏)과 싸우는 꿈을 꾸기도 했다. “평소에도 ‘밥 샵같이 큰 선수를 꺾으려면 우선 발차기로 그의 다리를 집중 공략한 뒤 태클을 들어가 팔 꺾기로 마무리를 짓고…’ 식으로 전술을 구상한다”고 말했다.

“원래 싸움에 관심이 많았냐”고 묻자 그는 “전혀요, 싸움은 아주 못해요”라며 웃는다. 조씨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남을 때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를 본 뒤 자신이 조직의 보스가 되는 상상을 가끔 할 정도로 ‘주먹 세계’에 대한 동경이 많은 편이다. 그도 처음에는 ‘내가 좀 이상한 거 아냐’라는 걱정을 했지만 인터넷 동호회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여럿 만난 뒤부터 걱정을 그쳤다. 조씨는 “맨주먹으로 싸워서 남을 이기는 것에 대한 열망은 남자의 본능”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했다.

용인대 태권도학과 양진방 교수는 “사람은 본래 ‘누가 더 강한가’를 가리는 데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있다”며 “고대 격투기나 로마시대 검투사 시합 모두가 이런 인간 본능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격투기의 잔인한 면도 팬들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된다. 격투기 팬인 김태영씨(24)의 설명.

“처음 볼 때에는 섬뜩하죠.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팰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쓰러진 상대 얼굴을 축구공 걷어차듯 발로 차는데 나도 모르게 ‘으악’ 비명도 질렀어요. 그러나 처음 몇 번만 넘기면 나중에 볼 때에는 별로 잔인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워낙 변수가 많은 격투기인 만큼 보는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살벌한 장면이 가끔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팬들에게 이는 오히려 시합을 박진감 있게 만드는 좋은 양념일 뿐 격투기 매력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팬들이 경기 때마다 ‘제발 이번 경기에는 더 잔인한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라고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RIDE 챔피언십(FC) 해설자 한태윤씨(31)는 “복싱을 보고 잔인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 사람들이 그런 유형의 시합을 여러 번 보면서 적응을 했기 때문이다. 복싱을 하다 선수들이 죽는 일은 있어도 이종격투기를 하다 선수가 죽는 일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종격투기를 더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종격투기가 더 잔인해서가 아니라 아직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종격투기에는 여성 팬들도 적지 않다. 지난달 3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남자들의 혈투를 직접 지켜본 여대생 유모씨(21). 그는 이종격투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근육질 남자들이 윗도리 벗고 싸우는 게 멋있어서요. 싸움 잘 하는 남자는 왠지 강해 보여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TV 드라마를 봐도 싸움 잘하는 최고 주먹 곁에는 항상 여자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1500여명의 관중 가운데 약 100여명이 여성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이종격투기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궁금해하던 점들이 하나씩 링에서 실제로 풀렸기 때문이다.

유도와 레슬링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일본의 자랑인 유도와 한국의 간판인 태권도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가라테와 킥복싱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태국의 무에타이(킥복싱과 비슷한 태국의 전통 무술)나 중국의 쿵푸는 실전에서 어느 정도 위력이 있을까?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실전에 나선다면 얼마나 강할까? 이런 궁금증이 실제 링 위에서 선수들의 대결을 통해 하나하나 풀렸다. ‘어느 무술이 최강이냐’라는 팬들의 궁금증을 적절히 상업화에 활용한 일본 주최측의 계산은 맞아 떨어졌다.

2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SPIRIT MC 대회 본선 8강 진출자도 브라질 유술 (柔術·브라질에서 시작된 실전 유도로 일본 유도와는 다름) 고수 2명, 무에타이 태껸 레슬링 킥복싱 이종격투기 전문선수 각 1명, 스트리트파이터 1명으로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다양한 무술 유파 참여가 팬들의 관심을 끄는 최대 무기라는 점을 미리 간파한 주최측은 본선 8강 가운데 절반인 4명을 각 유파 고수들로 채워 넣고 이들에게 예선을 면제해줬다.

●3류냐 고급 스포츠냐

이종격투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주류 스포츠에 오른 적이 없었다. 실제 현대 이종격투기의 뿌리는 대부분 암흑세계의 주도 아래 술집 지하 등 어두운 장소에서 벌어진 도박꾼들의 돈벌이를 위한 경기.

그러다가 1990년대 일본에서 주류 스포츠로 격상됐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K-1의 월드그랑프리 대회는 도쿄돔에서 6만명이 넘는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일본 못지않게 이종격투기가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한국은 올림픽마다 유도 태권도 레슬링 등 격투기에서 꼬박꼬박 금메달을 딸 정도로 격투기 강국이며 그만큼 선수 저변도 넓다. 태권도 태껸 등 고유 무술의 발달로 무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은 편. 경인방송 해설자 천창욱씨는 “실제 일본에서는 한국의 이종격투기 시장을 대단히 크게 보고 있으며 PRIDE나 K-1의 한국 진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싫건 좋건 현대 스포츠 가운데 가장 잔인하다는 이종격투기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수십만을 헤아리는 팬들도 있다. 이 경기가 ‘19세 시청 불가’라는 딱지가 붙어 방송되긴 하지만 이미 상당수 청소년들은 사쿠라바, 밥샵, 노게이라 등 이름난 선수들을 영웅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SPIRIT MC경기를 지켜본 조태호씨(28·5년째 이종격투기 팬)는 이렇게 말했다.

“첫 경기 치고 선수 수준은 비교적 훌륭했다. 이제 주최측과 팬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뒷골목 ‘조직’같은 사람들이 응원한답시고 ‘저놈 죽여’ ‘얼굴을 까버려’라고 외치는 대회가 된다면 이종격투기는 곧 3류 시합으로 전락할 것이다. 3류 스포츠냐 고급 스포츠냐, 지금이 한국 이종격투기 전개의 중요한 갈림길인 것 같다.”

제1회 SPIRIT MC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권건우 선수(오른쪽)가 16강전에서 최영민 선수에게 뒤돌려차기를 하고 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팔각의 링 하얀 매트는 선홍색 핏자국으로 군데군데 얼룩졌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기 전까지 서로의 얼굴과 몸통을 때리던 주먹으로 그들은 악수를 나눴고 서로의 팔을 꺾고 목을 조르던 팔로 얼싸안았다.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코에서는 한줄기 피가 흘렀지만 그들은 웃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SPIRIT MC(Martial Challenge)’ 이동 격투기 대회 예선전에는 다양한 무술 경력을 가진 64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가라테, 복싱, 킥복싱, 브라질 유술, 무에타이 등의 무술을 연마한 이들이 각종 무술에서 따낸 단(段) 수를 합하면 200단이 넘었다.

실전 격투기를 즐기는 1500여명의 팬들이 이날 경기장을 찾았다.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통해 격투기에 대해 이미 친숙한 사람들이었다.

● 패배가 가로막아도

29일 1차 토너먼트를 펼쳐 이긴 32명이 이날 경기에 참여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이 중 8명이 출전을 포기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이긴 선수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면 진 선수가 대신 진출할 수 있었지만 그들도 모두 포기했다. 일본 격투기 프라이드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대회 현장책임자 한태윤씨(프라이드FC 해설자)는 “실전 격투기를 처음 해 봐서 그런지 부상이 예상보다 많았고 체력들도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며 씩 웃었다.

16강전 마지막 경기는 브라질 유술을 4년여간 연마한 손광석씨(36·재미교포)와 ‘스트리트 파이터’로 소개된 이은수씨(21)의 대결이었다. 손씨는 키 176㎝에 몸무게 70㎏, 이씨는 183㎝에 110㎏.

상대를 쓰러뜨려 매트에 눕힌 뒤 꺾기나 조르기 등의 서브미션(submission·항복) 기술로 승부를 내는 브라질 유술을 구사하는 손씨는 경기 초반 이씨를 붙잡지 못하고 되레 안면을 주먹으로 맞아 다운됐다. 이씨의 발차기가 누워 있는 손씨의 얼굴에 몇 차례 더 작열하자 주심은 경기를 중지시켰다. 경기가 시작된 지 채 40초가 되지 않았다. 손씨의 왼쪽 눈 위가 2㎝가량 찢어졌다. 손씨의 세컨드는 “그렇게 일찍 (경기를) 중지하는 게 어디있냐”며 곁에서 씩씩댔고 침울한 손씨는 의료진이 상처를 살피는 동안 눈을 감았다. 의료진은 “병원에 가서 꿰매야겠다”고 했지만 손씨의 미국인 세컨드는 바셀린과 지혈액을 면봉에 묻혀 능숙하게 상처를 지혈하며 말했다. “꿰맬 필요까지는 없겠어.”

프로권투 라이트급 한국 4위까지 올랐던 고용석씨(28)는 16강전에서 포기했다. 전날 경기를 마친 뒤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오른쪽 무릎 위가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에 나온 고씨는 한동안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링을 떠났다.

인터넷 격투기동호회인 암록(armlock)을 대표해 경기에 출전한 김형균씨(22)는 아마추어였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유단자였지만 그저 격투기가 좋아 실전에 나섰다. 16강 상대는 태국 전통 무술인 무에타이를 익힌 이면주씨(27).

김씨는 5분 2라운드를 뛰는 동안 주먹으로 발로 무릎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머리는 금세 풀어져 시야를 가렸다. 끝내 경기를 포기했다. 피가 흐르는 코는 퉁퉁 부어 올랐고 얼굴 곳곳이 벌게졌다.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동호회 회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잠시 침울해졌던 김씨가 말했다. “체력이 너무 달렸어요. 훈련을 많이 해서 다음 번에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둬야죠. 파이팅!”

● 나를 더 잘 알고 싶다

정재웅씨(31)가 링에 오르자 링 아나운서는 “낮에는 증권회사 이사, 밤에는 격투사”라고 그를 소개했다. 키 175㎝, 몸무게 110㎏의 정씨는 미국 시카고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현 UBS 워버그 증권 서울지점 이사다. 무술가 답지 않게 허리는 물살로 출렁이지만 정씨는 브라질 유술을 4년 배웠고 지난해 12월 국내 한 격투기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경기를 치를 때마다 내 한계가 깨지는 것을 느낍니다.”

경기를 할 때마다 정씨와 세컨드들은 한 줄로 서서 앞사람의 어깨에 양손을 얹은 채 링까지 들어 왔다. 격투기 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브라질 유술의 창시자 그레이시 가문의 ‘그레이시 트레인’이라는 입장 의식이었다.

정씨는 16강에서 특공무술 유단자인 천길명씨(21)에게 시작하자마자 얻어 맞기 시작했다. 결국 정씨 코너에서 수건이 날아들면서 경기는 중단됐다. 얼굴은 주먹에 맞아 핏발이 군데군데 섰고 눈 부위는 부어 올랐다. 정씨는 “비록 졌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웃는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그에게 관중석의 ‘서울 브라질리안 주지쓰(유술의 일본어 발음) 아카데미’ 소속 회원 50여명이 환호와 박수로 답했다.

그러나 이날 가장 인기 있었던 선수는 ‘대머리’ 태권도 선수 권건우씨(31)였다. 32강전에서 상대의 명치에 뒤돌려차기를 꽂아 KO승을 거둔 태권도 5단의 권씨는 16강에서 킥복싱 선수인 최영민씨(23)와 맞붙었다. 두 선수는 5분 2라운드 경기를 마친 뒤 연장 3분을 더 치르는 혈전을 벌였다.

관중은 “태권도 아저씨 힘내라”며 응원을 했지만 결과는 권씨의 전원일치 판정패. 권씨는 퇴장하면서 관중석을 향해 두 손을 들고 허리를 숙여 큰절을 두어번 했고 관중은 큰 박수로 패자를 위로했다.

“휴, 태권도장 관장을 5년 했지만 이런 시합은 고등학교 이래 처음이에요. 내 실력을 어느 정도인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죠. 이제는 알겠네요.”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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