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쿠엘류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포백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뒤 축구팬 사이에 논쟁이 한창이다. 콜롬비아 일본과의 두 차례 평가전을 1무1패로 끝내자 ‘한국은 스리백이 어울린다’느니 ‘한국선수들은 포백을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둥 갖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전 기술위원장(세종대)은 “포메이션은 생물체와 같다”고 말했다. 절대적,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선수, 상대팀에 따라 가변적,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것.
브라질은 카를로스와 카푸라는 최고의 윙백을 보유했던 94년 미국월드컵에서 포백(4-4-2)포메이션으로 우승했다. 그러나 지난해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와 호나우디뉴의 공격력을 살릴 수 있는 스리백(3-5-2)으로 정상에 섰다.》
●어떤 수비포메이션을 선택할 것인가
‘포메이션’은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들을 배치하고 조직화 하는 방법’.
현대 축구에서 수비포메이션의 양대축은 스리백과 포백. 이 포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상대 공격수보다 수비숫자를 최소 한명은 많게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상대가 투톱을 쓸 경우 스리백으로, 상대 공격이 3명일 경우 포백으로 응수한다는 것.
가령 상대가 원톱포메이션으로 나올 땐 포백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원톱 자체가 재능있는 미드필더의 활동반경을 넓혀주기 위한 전술이기 때문에 ‘새도우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양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의 공격가담을 막기 위해서는 포백이 더 효율적이다.
●스리백과 포백
스리백의 특징은 맨투맨 대인방어. 스리백은 수비 약점을 메우기 위해 중앙 수비수를 양 측면 수비수보다 조금 앞으로 배치해 상대의 포워드를 차단하는 ‘스토퍼 포메이션’이나 중앙 수비수를 처지게 배치하는 ‘스위퍼 포메이션’을 쓰기도 한다.
이 수비전술은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독일(3-5-2)이 우승하며 크게 유행했다.
이에 반해 포백은 지역방어를 펼친다. 공수의 간격을 30m 이내로 좁힌 상태에서 강력한 압박을 구사하는 것도 특징 중 하나. 94년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들고나와 우승하며 포백의 인기가 치솟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두 포메이션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 독일의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가 아래로 처져 스리백인지 포백인지 거의 구분이 안 된다. 포백진영도 스리백의 장점을 좇아 수비수의 위치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포백을 하려면
축구에서 ‘명수비수 한명 만드는 게 명공격수 10명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비수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포백은 ‘축구의 공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포메이션.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선 4명의 수비수가 한몸처럼 움직이며 ‘생각하는 축구’를 해야 한다.
쿠엘류 사단의 포백(박충균-김태영-조병국-최성용)은 김태영을 빼고는 아직 경험이 적은 데다 어릴 때부터 대인방어 개념에 익숙한 신진들. 따라서 같이 훈련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며 국제 경험도 더 쌓아야 한다. 핫토리-모리오카-아키타-나라하시로 이어지는 일본의 포백은 월드컵 훨씬 이전부터 호흡을 맞춰 오늘날의 ‘철벽 포백’이 됐다.
포백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4명의 수비수가 나란히 늘어서는 일자형. 대부분의 유럽 프로리그에서 채택하고 있는 전술로 일사불란한 전진과 후퇴로 강한 압박을 구사한다. 한국도 일자형.
남미에서는 가운데 2명의 수비수중 한 명을 스위퍼 형태로 처지게 배치한다. 일본은 남미식을 기본으로 가운데 두 명을 모두 처지게 배치해 수비를 안정시키고 양 측면에서 공격가담을 많이 하는 변형 포메이션을 구사한다.
도움말=이용수 세종대 교수
박성화 축구대표팀 수석 코치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한국축구에도 포백 맞는다”…박성화 수석코치의 체험론
포백포메이션 한국 정착을 시도중인 쿠엘류 국가대표팀 감독의 일급 조력자인 박성화 수석코치(사진)는 “포백포메이션이 수비조직적인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에서 포백포메이션을 가장 먼저 실제 전술로 도입한 지도자다.
박 코치가 포백을 처음 접한 것은 국내에서 스리백이 대세를 이루던 93년. 유공(현 부천 SK) 감독이던 박 코치는 당시 일본 동계훈련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수비에 유공 선수들이 쩔쩔 매는 것을 보고 포백포메이션의 위력을 확인한 뒤 곧바로 도입했다.
박 코치는 이어 95년 1년 간의 영국 연수동안 포백을 더욱 익힌 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아 본격적으로 갈고 닦았다. 그의 고집은 지난해 청소년대표팀(20세 이하)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면서 결실을 맺었다.
박 코치는 “한국 선수들이 포백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축구를 시작한 뒤 성인이 될 때까지 스리백에만 익숙해진 결과”라며 “조직력만 잘 갖추면 포백은 스리백보다 더 강한 포메이션”이라고 장담했다.
박 코치는 또 “포백은 수비조직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팀의 전술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 현대축구에 더욱 적합하다”며 “청소년팀같이 일찌감치 포백을 접한 선수들은 오히려 포백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선수 특성 중시해야”…‘4강신화’ 히딩크의 교훈
지난해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취임 초기 포백을 시도하다 끝내 스리백으로 돌아왔다. 한국선수들의 문제점과 특성을 파악한 뒤 굳이 포백을 고집하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월드컵을 1년6개월 앞두고 감독에 오른 히딩크가 발견한 한국 선수들 최대의 문제점은 바로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기에는 부족한 체력이었다.
또 수비조직력과 패스, 골 결정력도 허점이 많았다. 이는 포백을 도입한다고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탁월한 스위퍼 홍명보의 존재도 스리백으로의 전환을 결심케 한 요인.
히딩크 감독은 포백이 전술적으로 장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전술에 얽매이기보다 선수들의 특성을 우선시 한 것.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월드컵 기간 중 스리백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에 따라 선수들의 위치를 이동시키며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이는 이영표와 송종국 등 ‘히딩크의 황태자’들이 포지션 변화에 따른 충격을 완벽히 소화해 냈기에 가능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았던 이용수 교수(세종대)는 “히딩크는 풍부한 경험으로 한국 선수들에 대한 분석은 물론 상대팀을 철저히 파악, 순간순간 창의적으로 전술을 발전시켜 적용했다”며 “우리 지도자들도 전술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히딩크로부터 이런 임기응변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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