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인 타자가 있었다.
이 선수는 얼마나 한심한지 정규시즌 개막 후 20타석이 지나도록 안타 하나 때려내지 못하고 나갔다 하면 삼진을 당하기 일쑤. 그래서 감독과 동료들 모두 혀를 끌끌 찼다. 구단 직원들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런데 4월 말부터 방망이가 달라졌다. 한국 투수들에게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타석에서 연일 새카맣게 날아가는 홈런 타구를 날리는 게 아닌가.
2002정규시즌을 끝낸 뒤 이 선수의 타격 성적은 132경기에서 타율 0.281에 45홈런 107타점. 4번 타자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최고의 성적을 거뒀고 홈런은 1위(47개)인 이승엽(삼성)과 불과 2개차였다.
SK의 호세 페르난데스 얘기다. 시즌 뒤 연봉협상이 결렬돼 올해 다시 한국 땅을 밟진 못했지만 찬스 때의 해결능력과 호쾌한 장타력으로 지난해 국내 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선수다.
올 시즌 두산 베어스에 마이크 쿨바(31)란 타자가 있다. 그는 98년 한국에서 뛰며 26홈런 97타점을 거둬 현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던 스코트 쿨바의 동생으로 잘 알려진 선수다.
팀에선 일본 프로야구로 떠난 ‘흑곰’ 우즈의 공백을 메우리라고 기대했지만 시즌 초반 기대에 영 못 미쳤다. 4월 5일 대구 삼성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삼진 3개에 병살타 1개로 패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 15경기를 소화할 때까지 타율이 1할대(0.196)에 그쳤다. 우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두산의 팀 성적도 덩달아 추락.
하지만 최근 3경기에서 쿨바의 방망이는 놀랍게 변신하고 있다. 광주에서 열린 기아와의 3연전에서 9타수 5안타에 3홈런 3타점을 쏟아냈다. 홈런은 6개로 이승엽 등과 함께 공동 1위.
‘조기퇴출’까지 검토했던 두산 김인식 감독은 “4월까지만 지켜보자고 했는데 그나마 타격이 살아나는 것 같아 다행”이라며 반가운 기색이다.
‘미운 오리새끼’였던 쿨바가 ‘제2의 페르난데스’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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