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앞서 카메라를 꺼냈더니 손가방에서 거울부터 나왔다. 헤어스타일과 매무새를 요모조모 찬찬히 살피는 모습이 영락없는 요조숙녀. 3년 전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깜찍한 미소를 짓던 여고생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사격 요정’ 강초현(21·갤러리아). 경남 창원종합사격장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예뻤다.
고교생 때의 앳된 얼굴 너머로 이제는 성숙미까지 흘러나왔다.
“새가 참 불쌍해 보이죠. 새장을 열어주고 싶어요.” 마주 앉아 무슨 말부터 꺼낼까 망설이고 있는 데 뜬금없는 새타령이었다.
인터뷰 장소였던 사격장 휴게실에서 키우는 새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갇혀 있는 새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여겼을까. “솔직히 틀에 박힌 생활이 답답할 때가 있어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흔들리지 않아요.”
“솔직히 틀에 박힌 생활이 답답할 때가 있어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흔들리지 않아요.”
현재 강초현의 소속은 세 군데. 2001년 1월 입단한 소속팀 갤러리아가 첫 번째. 지난해 3월에는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02학번으로 입학했다. 또 올 1월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 다시 들어갔다.
몸은 하난데 매인 곳은 세 곳. 특히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힘들지만 사격 선수로도, 학생으로도 다 잘 해내고 싶어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후회 없이 노력하는 과정에 충실할 겁니다.”
마음을 비우니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일까. 올해 들어 2년3개월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난달 청원에서 벌어진 봉황기 대회에서는 실업무대 첫 우승의 기쁨까지 누렸다.
“대표라는 자부심이 생기면서 훈련을 더 열심히 했어요. 정신력이 강해졌고 체력도 붙었고요.”
동계훈련 기간동안 매일 오후 2시간 가까이 태릉선수촌 인근 불암산 정상까지 뛰어오르며 힘을 길렀다. 또 평소 40∼50발을 쏘던 연습 사격을 90∼100발로 늘려 격발 감각을 키웠다. 유럽과 중국 전지훈련으로 선진 기술과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결선에서 등수나 기록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페이스가 흔들리던 약점을 보완했다”는 게 대표팀 장재관 감독의 말.
다음달 1일 강초현은 대표팀 유럽원정을 떠나 크로아티아와 독일 월드컵에 잇달아 출전한다. 여기서 입상권에 들어 내년 아테네올림픽 출전 쿼터를 따는 게 1차 목표. 시드니에서 0.2점차로 아쉽게 날린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부푼 희망도 가슴 한 구석에 꼭꼭 담아두고 있다.
“주위에서 기대가 큰 게 사실이에요. 일단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는 게 중요해요. 국제대회에서 성적 내는 일보다 대표선발전 통과가 훨씬 어렵거든요.”
강초현의 주종목인 공기소총은 한국 선수들 기량이 세계정상급. 국내 대회 때는 매번 우승자가 바뀔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쟁쟁한 선수가 워낙 즐비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쏴야 해요. 선수가 기계도 아니고 언제나 잘 쏠 수 있나요. 다만 강박관념을 떨쳐내고 늘 최선을 다해 집중하다 보면 좋은 성적이 나오겠죠.”
강초현은 시드니 올림픽 이후 신드롬이라는 표현이 붙을 만큼 뜨거운 유명세를 탔다. 게다가 어려운 가정환경이 부각되면서 신데렐라라는 애칭과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라섰다.
하지만 주위의 지나친 관심 탓인지 사선에서는 오랜 슬럼프에 시달렸다. 지난해 부산 아시아경기 선발전에서는 1점차로 4위에 그쳐 상위 3명에게 주어진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고 TV해설자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어느덧 수만명에 이르던 팬도 수십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정작 강초현은 “영원한 인기라는 게 있나요. 재미있는 추억이었어요. 좋은 인생 경험이었죠”라며 느긋하다.
‘계절의 여왕’ 5월은 대학가 축제의 달. 사격 얘기를 떠나 캠퍼스 생활이 궁금했다. “축제는 남의 나라 얘기에요. 선수촌에서 합숙하다보니 학교 수업은 거의 못 들어가는 걸요. 지난해 신입생 때는 축제 구경하면서 교내 잔디밭에서 막걸리도 마시며 재밌게 보냈는데….”
요즘은 어쩌다 외출이라도 나가면 담당 교수에게 인사드리고 같은 과 친구들 만나 학교 근처 허름한 분식집에서 떡볶이 튀김 배불리 먹는 게 큰 즐거움이라고. “학창 시절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미팅으로 남자 친구 만들고 여행도 실컷 다니고 싶은데….”
어릴 적부터 장래 희망은 교사. 이 꿈을 위해 사범대에 진학한 강초현은 “키가 작아(1m58-실제 키보다 크게 써달라고 신신당부) 교단에 서면 아이들이 잘 따라올까 걱정”이라며 웃었다.
요즘 책읽기에 재미를 붙인 강초현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하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행복을 느낄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 못하고 걱정이 될 거야.’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하는 이 구절은 외우고 있을 만큼 기억에 남는단다.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라는 뜻 아닌가요.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른스러워진 겉모습만큼이나 강초현의 마음가짐도 한결 여유로워지고 꽉 찬 듯 했다.
창원=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강초현은 누구?
△생년월일〓1982년 10월23일
△신장〓1m58, 45kg
△가족관계〓강희균(99년 작고) 김양화씨(43)의 외동딸
△학력=대전 외삼초-유성여중-유성여고-고려대 체육교육과 2년 재학중(2002년 입학)
△실업팀=갤러리아 사격단(2001년 1월 입단)
△좌우명=긍정적으로 살자
△별명〓초롱이, 둘리
△혈액형〓B형
△e메일 주소〓st0907@hanmail.net
△좋아하는 음식=초밥, 우동
△주량=소주 반병
△즐겨 부르는 노래〓블랙 비트 ‘헤어지기 전’
△소유 차종=아반떼 XD(2003년 처분)
△수상경력=2000년 국제사격연맹(ISSF) 애틀랜타월드컵 우승,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 2003년 4월 봉황기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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