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쑥스러워했다.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한 게 언제였더라. 7년 전쯤인가. 98년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했을 때도 머리가 치렁치렁했으니 아주대 시절이었나 보다.
2일 경기 고양시의 백마부대 신병교육대. 전날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월드컵 스타’ 안정환(27·시미즈 S펄스)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서였다. 부인 이혜원씨도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왔다.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전투도 축구와 비슷한가 봐요. 군대에 가려니까 상대와 싸우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서듯 긴장이 되네요.”
‘꽃미남’ ‘꽃을 든 남자’…. 그는 늘 말쑥했다. CF에서도 상대역의 남자 탤런트보다 안정환이 더 멋있었다던가. 그래서인지 스포츠형 머리에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이 어색해 보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 안정환은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병역혜택을 받아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으면 된다. 그게 미안해서였을까. 그는 “정상적인 군복무를 하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열심히 군사훈련을 받겠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축구팬에게 멋진 골을 선사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상의를 벗어젖혀 ‘혜원 영원한 내 사랑(Hyewon Love Forever)’이라고 새긴 문신을 내보이며 아내 사랑을 한껏 뽐냈던 안정환. 이날도 그는 부대 정문을 향하다 다시 아내에게 다가가 포옹하고 키스를 하며 4주간의 ‘짧은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한일전 골 세리머니는 미리 준비한 게 아닙니다. 기쁨에 겨워 상의를 벗었는데 공교롭게도 최근 새긴 문신이 드러난 것입니다.”
떠나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이씨는 “몸조심하고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매일 편지할게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를 땐 속이 너무 상했어요. 그러나 국방의 의무는 남자면 당연히 완수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또 4주만 교육받으면 돼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6월 말쯤이면 유럽행 가닥이 잡힐 겁니다. 제가 원하는 빅리그에 꼭 진출해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돌아와 뵙겠습니다.”
안정환은 씩씩하게 “백마!”를 외치고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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