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1년. 소녀는 약속대로 그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자신을 지켜볼 어머니는 없다. 95년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
벨기에의 테니스 스타 쥐스틴 에냉(21). 6일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여자단식 준결승에서 최강 세레나 윌리엄스(미국)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그는 역경을 딛고 정상 문턱에 다가섰다. 13세 때 어머니를 잃은 뒤 집배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여동생, 두 오빠와 어렵게 자랐다. 어머니 노릇까지 하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떠맡아야 했고 2001년에는 사사건건 간섭을 일삼는 아버지 곁을 떠났다. 불우한 환경 탓이었는지 “빨리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다”며 지난해 11월 20세의 어린 나이로 결혼했다.
결혼한 뒤 세계랭킹 4위까지 오르는 등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에냉의 7일 결승전 상대는 같은 벨기에 출신으로 테니스 스타 레이튼 휴이트(호주)의 연인인 세계 2위 킴 클리스터스(20). 메이저 테니스대회에서 벨기에 선수끼리 우승을 다투게 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 10년 넘게 자국 내에서 라이벌이었던 이들 모두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이자 사상 첫 벨기에 출신 메이저 챔피언 등극을 노리고 있다. 상대 전적에선 클리스터스가 7승5패로 앞서지만 지난달 독일오픈에서는 에냉이 이겼다.
한편 메이저 5연속 우승을 노리던 톱시드의 윌리엄스는 준결승에서 적대적인 관중과 또 다른 신경전을 벌인 끝에 집중력이 떨어지며 1-2(2-6, 6-4, 5-7)로 무너졌다. 메이저 33연승 행진 마감. 이날 파리지앵과 벨기에 원정 응원단은 약자인 에넹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반면 윌리엄스에게는 줄기차게 야유와 조롱을 퍼부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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