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존슨과 쌍벽을 이루는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부정 방망이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새미 소사에게 한 언급 때문. 그는 “소사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도 “마크 맥과이어나 칼 립켄 주니어였다면 이렇게 헐뜯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와 같은 도미니카 출신으로 영어가 서툰 소사에게 통역 없이 얘기를 하게 해 문제가 확대됐다”며 공인에게는 금기시돼 있는 인종차별 발언을 정면 거론하고 나섰다.
첫 번째 놀람은 소사의 영어 실력. 소사는 89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니 아무리 못해도 20세 때부터 15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더욱이 그는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으로 한국이나 일본 선수에 비하면 몇 배는 수월하게 영어를 터득할 수 있었을 터.
두 번째는 마르티네스와 소사 같은 슈퍼스타조차 여태껏 백인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 마르티네스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 때도 “배리 지토가 상을 탈 충분한 자격이 있지만 나의 성적도 그에 못지않다”며 “만약 내가 로저 클레멘스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최근 박찬호와 김병현에게 쏟아졌던 미국 언론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올 들어 최희섭에 대해 미국 언론과 팬, 동료들이 보여준 찬사와 기립박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최희섭이 앞의 네 선수와 달리 미국에 건너가자마자 곧바로 빅리그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무려 4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친 ‘메이드 인 아메리카’이기 때문. 여기에 그의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과 성실성이 더해진 덕분으로 보인다.
최근 여자골프에서 박세리나 김미현보다 한국계 13세 천재소녀 미셀 위가 더욱 각광을 받은 것은 그가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뛰어넘어 미국 국적의 ‘본 인 아메리카’라는 이유에서다.
‘기회의 땅’이면서 동시에 ‘차별의 땅’이기도 한 미국. 최희섭을 비롯,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추신수 등 젊은 유망주의 활약에 더욱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이들이 마이너리그에서부터 미국선수들과 동고동락한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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