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스포츠 카페]80년대 고교야구 최고스타 박노준

  • 입력 2003년 6월 29일 19시 45분


해설자로서 ‘제2의 야구인생’을 활짝 펼쳐나가고 있는 박노준씨. 80년대 고교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그가 평생 잊지 못할 황금사자기대회 순간을 회고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해설자로서 ‘제2의 야구인생’을 활짝 펼쳐나가고 있는 박노준씨. 80년대 고교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그가 평생 잊지 못할 황금사자기대회 순간을 회고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황금사자기대회는 평생 잊지 못할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유난히 챙이 큰 모자를 즐겨 썼던 80년대 고교야구 최고 스타 박노준씨(41). 이제 흰머리가 낯설어 보이지 않는 중년이 됐지만 황금사자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퍼지는 미소는 예전 그대로다.

그는 지금 SBS 야구해설위원. 2000년 경인방송 메이저리그 전담 해설위원으로 방송활동을 시작했고 이듬해 SBS로 자리를 옮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다 오랜 선수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리있는 말솜씨로 각 매체로의 해설자 영입 ‘0순위’.

26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그는 막 프로야구 경기해설을 마친 뒤 기록을 챙기고 있었다.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선배 입장에서 경험을 얘기해 줄 수 있고 야구팬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듭니다.”

황금사자기를 통해 그가 최고의 스타가 된 무대는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2학년이던 80년 대회. 고교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 때, 대회가 열리면 동대문야구장 근처는 인산인해를 이뤘고 암표상이 진을 쳤다. 또 2만명 수용규모의 관중석은 늘 3만여명이 들어차 터져나갈 듯했고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함성과 탄성이 터졌다.

당시 박노준은 이미 최고의 스타. 수려한 용모에 투타, 주루와 수비를 겸비해 만능선수로 불린 그는 단발머리와 갈래머리 여고생들의 우상이었다.

80년 대회 4강은 박노준의 선린상고를 비롯, ‘무등산 특급’ 선동렬이 버틴 광주일고, ‘고무팔’ 이상군의 천안북일고와 ‘황소’ 민문식의 세광고. 청룡기를 이미 손에 넣었던 선린상고는 준결승에서 대붕기의 주인공 세광고를 물리쳤고 대통령배 우승팀 광주일고도 봉황기 패자 천안북일고를 눌렸다.

드디어 결승전. 야구팬의 관심은 온통 이 한판에 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황금사자기대회는 우수고교들을 모두 초청해 한해를 결산하는 대회. 우승팀은 ‘왕중왕’으로 불릴 정도였다.

박노준과 선동렬은 경기 전 만나 애써 느긋하게 농담을 주고 받았단다. 1년 선배로 졸업반이던 선동렬이 박노준에게 “야 하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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