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47세 鐵女’ 윔블던 최고령 우승

  • 입력 2003년 7월 7일 17시 31분


30년 전 꿈 많던 10대 소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윔블던의 푸른 잔디밭을 처음 밟았다.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긴 세월이 흘러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주름살이 깊게 새겨졌고 눈도 침침하다. 코트에서 황혼도 이미 지난 50줄을 바라보는 나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승부의 세계에 몸을 담고 있다. 그것도 만인의 존경을 받는 정상의 자리를 지키면서….

‘철의 여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47·미국). 그는 7일 영국 런던 인근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시즌 3번째 메이저테니스대회 윔블던 혼합복식 결승에서 레안더 파에스(30·인도)와 짝을 이뤄 우승했다. 앤디 램(23·이스라엘)-아나스타샤 로디오노바(21·러시아)조를 2-0(6-3, 6-3)으로 누른 것.

나브라틸로바는 이로써 개인통산 20번째 윔블던 타이틀을 따내 빌리 진 킹(미국)이 갖고 있던 대회 통산 최다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공교롭게도 킹의 윔블던 20승 기록은 나브라틸로바와 짝을 이룬 79년 여자복식에서 나왔다.

또 마거릿 듀폰(미국)이 62년 세웠던 대회 최고령 우승기록(44세)도 41년 만에 갈아 치웠다. 95년 이 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한 뒤 8년 만의 정상 복귀.

나브라틸로바는 “그때 이후 다시 이곳에서 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또 지난달 29일 타계한 영화배우 캐서린 헵번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80년대 그녀에게 윔블던 응원을 오라고 부탁했는데 떨려서 못 보겠다며 안 왔다”면서 “이번 우승을 그녀에게 바치겠다”고 말했다.

17세 때인 1973년 윔블던에 처음으로 출전한 나브라틸로바는 이 대회에서 단식 9회, 복식 7회, 혼합복식 4회 제패로 20승 고지를 채웠다.

이번에 결승 상대였던 램과 로디오노바는 나브라틸로바가 윔블던 단식에서 처음 우승했던 1978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파트너인 파에스는 “나브라틸로바의 경기를 보고 감동받았을 때는 내가 일곱 살이었다”고 말했다.

자식 또는 조카뻘인 까마득한 후배들과 싸우면서도 철저한 체력관리로 좀처럼 지치는 법이 없다. 이날도 준결승과 결승을 하루에 치르는 강행군이었으나 힘이 넘쳤다. “운동을 하고 있는 한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부분에 의해 제약받고 싶지 않다.”

94년 은퇴 이후 2000년 코트에 복귀한 나브라틸로바는 윔블던을 비롯해 4개 그랜드슬램대회에서 통산 58회(단식 18·복식 31·혼합복식 9회) 우승으로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마거릿 스미스 코트의 최다 우승기록은 62회.

올 들어 호주오픈 혼합복식 우승에 이어 메이저 2승을 거둔 나브라틸로바를 보면 신기록 달성은 시간문제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세계 1위, 메이저 우승 등은 세속적인 목표다. 기록을 깨려고 돌아온 게 아니었다. 테니스 자체를 즐기고 오래도록 코트를 지키는 내 모습에 힘을 얻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뛰고 있다. 그것은 죽는 날까지 항상 내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브라틸로바의 도전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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