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새벽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 링크에 들어서자마자 ‘마∼’ 하는 스케이트날의 날카로운 금속음이 귓전을 때렸다. 늦여름인데 입에서 서리가 나오며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링크 위의 선수들은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 있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유니폼. 현대 오일뱅커스라고 쓰인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있는가 하면 동원 드림스, 대학 유니폼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들은 누굴까. “그저 아이스하키에 미친 사람들이죠.” 최고참 선수이자 플레잉코치인 현대 출신 박경운(34)이 한마디 툭 던진다.
이들은 한국아이스하키의 ‘아웃사이더’들.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해체된 실업팀 현대 오일뱅커스, 동원 드림스 선수들과 실업팀에 가지 못한 대학선수들이다. 한라 위니아에서 뛰다 군에 입대한 이종훈 등 공익근무요원도 10명이나 된다.
이들이 뭉치게 된 계기는 바로 하나, 아이스하키를 잊을 수 없어서였다.
팀 해체 후 오갈 곳 없게 된 이들은 잠깐 인라인하키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인라인하키로는 운동욕구를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현대 출신인 박진홍과 백승훈이 앞장서 선수들을 불러 모은 게 게 약 3개월 전.
이들은 1주일에 두 번씩 목동링크와 안양링크에 모인다. 2시간에 14만원 정도인 링크 대관료는 각자 주머니를 털어 댄다. 유니폼과 장비 모두 예전에 쓰던 낡은 것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희소식이 들렸다. 아이스하키 동호인인 한 벤처사업가가 일체의 훈련비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멀티미디어 프로덕션인 R&I의 대표이사인 김지욱씨(37)는 “나도 아이스하키 마니아인데 이 사람들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급은 없지만 마음놓고 운동하게 된 것만도 다행. ‘모빌 엣지(Mobile Edge)’라고 팀이름도 지었다. 사령탑은 전 현대감독이었던 박현욱씨(39). 팀 해체 후 할인마트에서 가게를 꾸려온 박씨는 “녀석들이 돌아가면서 매일 전화하고 사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맡게 됐다”며 웃었다. 그 역시 월급 없는 자원봉사다.
‘모빌 엣지’의 인원은 30명.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허락을 얻어 이달 말 선수등록을 하고 다음달 8일부터 열리는 종합선수권대회와 11월 열리는 한국리그에도 참가한다.
오기로 똘똘 뭉쳐서인지 이들의 전력은 무섭다. 최근 연습경기에서 경희대를 10-1로 눌렀을 정도. 동원 드림스 출신의 윤태웅은 “월급 받고 뛰는 선수들, 우리한테 지면 얼굴 못 들걸요”라며 자신만만해했다.
“실업팀이 다시 생기면 좋겠지만 거기까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아이스하키만 할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조그만 자영업으로 아이 셋을 키우는 박경운은 “다음달 종합선수권대회 때 큰딸 세연이가 응원하러 온다고 했다”며 활짝 웃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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