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선 한국야구를 아직은 한 수 아래로 생각하고 있을 터. 더욱이 현 기록보유자인 오 사다하루(왕정치)는 대만 국적을 버리진 않았지만 일본 이름으로 개명한 그들의 우상이 아니었던가. 이런 그들이 과연 이승엽의 기록을 인정해줄까.
일단 결론은 접어두고 미국으로 화두를 돌려보자. 메이저리그는 올해 ‘마쓰이 논쟁’으로 뜨거웠다. 내용인즉 일본에서 10년을 뛰며 최우수선수(MVP)를 3번이나 차지했고 3년간 2100만달러(약 252억원)의 역대 신인 연봉 최고액으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마쓰이 히데키에게 신인 자격이 있느냐는 것.
이는 미국인들이 마쓰이 돌풍에 놀랐다는 뜻도 되지만, 뒤집으면 그동안 얼마나 일본야구의 수준을 낮춰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일본 최고의 거포라도 마이너리그 새내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미국인들의 생각을 바꿔놓았을까. 사실 올해 마쓰이의 성적은 그동안 메이저리그 신인왕에 올랐던 3명의 일본인 선수에 비해 결코 나은 편이 아니다. 95년 노모 히데오, 2000년 사사키 가즈히로에 이어 2001년 MVP까지 석권한 천재 타자 스즈키 이치로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데도 올해 뒤늦게 논쟁이 시작된 이유는 마쓰이에 앞서 신인왕을 차지한 선배들이 메이저리그의 고정관념을 서서히 무너뜨려 온 결과였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자. 일본은 한국의 프로 출신을 신인으로 낮춰보지는 않는 편이다. 그동안 세 차례의 한일슈퍼게임에서 보여준 한국의 선전과 선동렬 이상훈 이종범 구대성 등의 맹활약을 인정하기 때문.
그러나 홈런 기록에 관한 한 일본이 이승엽을 인정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는 미국이 오의 868홈런이 아닌 행크 아론의 755홈런을 개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이승엽의 기록 달성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앞에서 설명한 이유 때문이다. 지금은 인정받지 못해도 언젠가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것이란 믿음에서다.
신기록의 희생양이 된 투수야 부끄럽겠지만 최소한 이승엽의 홈런 생산을 고의로 막는 일은 없어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39년 전 일본에선 오의 신기록 수립을 위해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zangpab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