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젊은 패장의 눈물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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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물’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기자가 야구인의 눈물을 처음 본 것은 91년 가을. 당시 빙그레 김영덕 감독의 방이었다. 그는 홈구장인 대전에서 한국시리즈 4차전마저 해태에 역전패, 4연패로 무너지자 인터뷰를 거절한 채 모습을 감췄다.

용맹스럽게도 감독 방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의 그 무안함이란…. 그때 환갑을 바라보는 원로였던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책상 위에 떨구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는커녕 어떤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이 장면을 한화의 높으신 분이 봤더라면 김영덕씨는 좀더 장수했을 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지난해 겨울. 다시 한번 기억에 남을 눈물을 접했다. 김성근 전 LG 감독의 회갑연. “오늘 여러분을 다시 보니 38년 전 대한민국에 영구 귀국한 것은 생애 최고의 결정이었다는 자부심이 든다”고 말을 꺼낸 그는 “감독이기에 앞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여러분과 가족의 미래를 책임지려고 했다”는 대목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150여명의 하객이 모인 회갑연은 어느새 눈물바다가 됐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이번엔 평소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젊은 감독의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25일 한국시리즈 7차전을 현대에 내준 SK 조범현 감독. 그는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스승인 김성근 감독님께 보답하고 싶었는데…”라는 짧은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눈물과 함께 퇴장했다.

조 감독이 공식석상에서 김성근씨를 ‘스승’이라고 얘기한 것은 처음. 그 만큼 ‘김성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지고 나면 아무 소용없어. 역사에 남는 건 우승 뿐”이라고 부르튼 입술을 깨물었던 그였다. 자신의 야구를 김성근의 수제자가 아닌 ‘조범현 야구’로 불러달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이 모두 ‘스승을 향한 끝없는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승부에 집착한다는 비난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우승컵을 스승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게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4차전 선발로 김원형 대신 김영수를 낸 뒤 일부에서 제기한 ‘김성근식 위장 오더’라는 악평까지 감수할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햇볕이 있으면 그늘이 있게 마련. 패배는 엄연한 현실. 이제 받아들일 일만 남았다.

“형님, 비정한 역사는 우승만 기록할지 몰라도 우리는 ‘초보 감독의 아름다운 패배’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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