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투지를 발휘하며 역대 최강 멤버인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필요할 때 방망이가 터지지 않았다. 일본 투수들이 한수위였다. 7일 일본 삿포로돔구장에서 열린 2004아테네올림픽 예선 겸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은 숙적 일본에 0-2로 패하며 1승2패를 기록, 일본(3승) 대만(2승1패)에 올림픽 티켓을 넘겨주고 말았다. 12년만의 올림픽 진출 좌절.
3만9000명의 팬들이 삿포로돔구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열린 라이벌전답게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양팀의 왼손선발인 이승호(LG)와 와다(다이에 호크스)는 초반 팽팽한 투수전을 전개했다. 둘다 빠른 볼 보다는 다양한 변화구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절묘한 피칭. 경기는 선취점 싸움이 됐다.
“선취점을 빼앗기면 일본 투수들에 말려드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한 선동렬 일본 분석요원의 지적대로 3회 한국이 먼저 점수를 내준 게 뼈아팠다.
이승호는 선두 니오카(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2루타를 맞은 뒤 1사 3루에서 미야모토(야쿠르트 스왈로스)에게 왼쪽 적시타로 선취점을 내줬다. 임창용(삼성)이 마운드를 물려받은 6회엔 무사 2루에서 앞선 2경기까지 9타수 5안타 4타점으로 일본에서 가장 타격감이 좋았던 후쿠도메(주니치)에게 우측 담장 상단을 맞는 2루타로 2점째를 허용.
이번 대회 내내 적시타 부족으로 허덕인 한국 타선은 2회 1사 2루와 4회 2사 만루, 6회 1사 1,2루의 찬스를 모두 살리지 못해 땅을 쳤다.
‘나가시마 저팬’이라 불린 일본 대표팀은 한국, 대만전에서 단 1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경기로 시드니올림픽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했다. 95년 이후 8년만에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일본은 경기가 끝난뒤 ‘울트라 니폰’의 연호속에 우승을 자축했다.
삿포로=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양팀 감독의 말
▽김재박 한국팀 감독=일본 투수들이 워낙 좋았다. 하지만 타자들이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다. 선수 선발에서부터 훈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미비했다. 그러나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이번에는 부상 선수들이 많았고 원했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빠진 데다 투수 로테이션도 불안했다.
▽나가시마 시게오 일본팀 감독=한국은 우수하고 매우 강한 팀이었다. 하지만 우리 팀의 재능이 좀 더 나았던 것 같다. 우리는 이번 대회 3경기에서 모두 24득점을 올리고 1실점만 했다. 마운드가 강했던 것이 결정적인 승인이었다고 본다.
▼약체 대표에 준비마저 소홀…한국야구 왜 패했나
올림픽 티켓 획득에 실패한 한국야구대표팀의 패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준비소홀’이다.
대만은 이번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천수이볜 총통이 대표팀을 격려했고 온 국민이 성원을 보냈다. 한국을 꺾기 위해 한 달간 합숙훈련까지 했고 쿠바에 파견됐던 야구월드컵팀을 엄청난 예산을 들여 일본으로 통째로 이동시켜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하도록 했다.
일본도 마찬가지.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에 두 차례나 패한 걸 치욕으로 여긴 일본은 명예회복을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일찌감치 최고의 영웅인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을 대표팀으로 영입, 스타급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일본대표팀은 선수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훈련시작 전 국가인 ‘기미가요’를 합창하도록 하는 등 정신무장을 시켰다. 대표팀 21명의 몸값만 173억원에 달할 정도로 일본은 모든 선수가 스타들이었지만 막상 경기에선 고교야구 선수들처럼 파이팅 넘치고 기본기에 충실한 야구를 펼쳤다.
한국은 어땠나. 1차 엔트리 때 뽑아놓았던 선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나갔다. 서재응(뉴욕 메츠) 김병현(보스턴 레드삭스) 구대성(오릭스 블루웨이브) 등 ‘해외파 3인방’은 메이저리그 사무국 규정과 팀 사정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고 송진우(한화) 이상훈(LG) 이승호(SK) 심정수(현대) 김한수(삼성)는 부상을 들어 엔트리에서 빼줄 것을 요청했다. 김동주(두산)가 “내가 뛰어본 대표팀 중 최약체”라고 했을 정도로 이번 대표팀은 ‘차’ ‘포’를 모두 뗀 ‘껍데기 드림팀’이었다.
게다가 포스트시즌 일정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모여 손발을 맞춘 건 겨우 1주일 정도. 선수뿐 아니라 한국시리즈에 매달린 김재박 감독 또한 치밀하게 대회를 준비했을 리 없다.
어쨌든 경기는 끝났고 한국은 실패했다. 투수교체가 잘못됐다거나 심판판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는 건 결과론이고 ‘핑계’다. 뼈아픈 교훈을 얻은 이상 4년 후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삿포로=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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