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15일 16일째 "힘들어 죽겠다."

  • 입력 2003년 12월 17일 14시 48분


썰매의 바닥인 검은색 부분이 하늘을 보고 있다. 강철원 대원이 넘어진 썰매를 바로 세우기에 앞서 망연자실 자신의 썰매를 바라보고 있다.
썰매의 바닥인 검은색 부분이 하늘을 보고 있다. 강철원 대원이 넘어진 썰매를 바로 세우기에 앞서 망연자실 자신의 썰매를 바라보고 있다.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15도

풍속 : 초속 8m

운행시간 : 07:15 - 16:10(10시간55분)

운행거리 : 27.4km (누계 :290.5km) /남극까지 남은 거리: 844km

야영위치 : 남위 82도 26분597초 / 서경 80도 40분 190초

고도 : 1,060m

아침바람이 차갑다고 대원들은 이구동성이다. 같은 기온이라도 체감온도에 따라 느껴지는 정도의 차가 다르다. 기상하면서부터 아침식사 준비, 혈압과 맥박체크, 텐트 안에서의 운행 준비 등을 촬영하느라 준비가 조금 늦어 졌다. 07:15분 출발.

대원들의 관심사는 '과연 어제의 운행거리를 오늘 새로 갱신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 어제 저녁부터 주요 화제에 올랐다. 하지만 언제 무슨 변수로 운행에 차질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다들 장담은 쉽게 하지 않는다. 운행거리가 짧아지느냐, 길어지느냐 하는 문제는 탐험대의 전체 일정에 큰 변화를 주기 때문에 모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스트루기 지역과 크기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날씨가 맑기 때문에 사이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방향을 잡는 박대장도 난감해 한다. 적당히 남쪽으로 나아 갈 상황이 못 되기 때문이다. 나침반을 보면서 전체적인 방향을 잡지만 사스트루기를 피하다 보면 진로가 엉뚱하게 바뀌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방향잡기에 고심하는 박대장. 뒤따르는 대원들은 박대장의 발자취만 쫓으면 그만이다. 그만큼 편한 운행이지만 워낙 굴곡이 심한 지형이라서 무거운 썰매를 끌고 나가기는 어렵기 매한가지이다.

오늘 운행의 특색은 10시간 55분 동안 내내 언덕을 올랐다는 것이다. 정말 긴 오르막이었고 운행을 마칠 시간이 되어서도 언덕을 다 오르지 못했다. 전날 보다 고도를 140m 올린 것을 보더라도 힘든 운행임을 짐작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가면 평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앞으로 썰매를 끌고 가보지만 언덕은 쉽게 그 마루를 보여주지 않는다. 사스트루기를 피해 간다고 하지만 썰매는 검은 배를 하늘로 드러내놓고 '배째라'는 식이다. 강철원 대원의 썰매는 오늘따라 심통이다. 못해도 50번은 옆으로 넘어지고 굴렀다. 그럴 때마다 뒤따르던 대원과 함께 썰매를 일으켜 세우지만 썰매는 주인의 생각과는 달리 도로 드러눕고, 오르막 길 오르는데 힘 빠지고 썰매 달래느라 맥 빠지고, 이래저래 힘든 운행의 연속이다. 아침에는 초속 6m의 바람이던 것이 한 낮이 되면서 초속 8m의 바람이 분다. 마파람으로 부니 이도 탐험대의 훼방꾼이다.

해는 남쪽으로 진행하는 대원들의 좌측에서 후면을 돌아 운행을 마칠 때면 우측에 와 있다. 그늘진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매서운 위력을 보여준다. 박대장은 물론이고 탐험대원 모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부르튼 입술에서 진물이 흐르고 있다. 바람을 맞고 운행하는 동안은 진물이 흘러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밥 먹을 때는 쓰라린 입술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침에 일어나면 달라붙은 아래 윗입술을 떼느라 물을 묻힌다. 오리주둥이가 따로 없다. 뭐라 말을 하려다가도 스스로 웃음이 나는지 아니면 아파서 그런지 허허 웃고 마는 박대장을 보며 대원들도 마주 웃다가 아픈 입술에 얼굴을 찡그리고 만다. 발바닥 통증으로 생전 처음 발바닥에 파스를 붙였다는 박대장.

썰매 밸트가 맞지 않아 일주일 전부터 목 근육 경련이 일어 고통을 호소하는 강철원 대원.

탐험대원들 중 가장 무거운 썰매를 끌며 휴식시간마다 뜨거운 음료를 준비하고 간식을 돌리는 오희준 대원은 지치고 힘든 얼굴표정이면서도 끝내 내색을 하지 않고, 오른쪽 다리 장단지에 피로골절로 통증을 호소하는 이현조 대원도 얼마나 아프냐는 말에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95kg 거구인 이치상 대원은 오른쪽 장단지 근육이 뭉쳐 걸을 때마다 아파죽겠다며 엄살을 피운다. 정작 두 배로 부어 오른 위 입술은 다른 대원들이 위안을 삼는 볼거리이다. 걸어온 거리가 늘어날수록 대원들의 몸은 누적된 피로로 잠자리에 누워 코고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오늘 저녁부터는 '배고파 죽겠다'는 이치상 대원의 요구에 따라 식사량을 늘렸다. 먹는 게 남는 거고 먹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없는 것이 탐험대의 현실이다.

'언덕 오르기'를 마친 박대장의 한마디에 대원들 모두 '그건 그래'하는 표정들이다.

박대장 曰 "힘들어 죽겠다."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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